큐레이터(전시 기획자) 제역할 찾기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국내 미술계에선 처음으로 큐레이터(전시 기획자)들이 모여 기획한 합동전시회가 열린다.
오는 8월17일부터 9월l5일까지 한달 동안 경기도 장흥 토탈 미술관에서 열리는「현존시각전」은 현재 각 화랑에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 9명에 의해 마련된다.
이 전시회 화랑의 간섭 없이 전시기획 전문가들이 독자적으로 꾸밈으로써 그 동안 유명무실했던 큐레이터제도를 점검하고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큐레이터들은 20대 후반∼30대 후반의 젊은 큐레이터들로 현재 화랑가에서 비교적 제 역할을 담당해온 역량 있는 이들이다.
참여 큐레이터들과 소속화랑은 김현주(갤러리 미건) 홍대일(샘터 화랑) 지명문(신세계미술관) 전호범(아나갤러리) 박영택(금호미술관) 김용대·한정욱(호암갤러리) 김영순(한원 갤러리) 정준모(토탈 미술관) 씨 등이다.
이들은 1년여 전부터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화랑대표의 단순한 보조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벗어나 큐레이터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되찾고 큐레이터제도의 정착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왔었다.
이들은 그 모색방안의 하나로 우선 자신들의 역량을 보일 독립적인 전시회를 갖기로 의견을 모으고 토달 미술관 측의 도움을 받아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
이들은 이번 전시회를 기존 화랑들의「상업적」전시회와는 다른 전시회로 꾸미기로 하고 작가선정 과정에서 대학교수·화랑전속작가·공모전 최고상 수상작가 등 소위「인기작가」는 배제하고 비교적 이름은 덜 알려졌으나 역량 있고 참신한「숨은 인재」들을 발굴키로 했다.
각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작가는 ▲김현주=최선명 ▲홍대일=안미영·최석운 ▲지명문=이용규·문주 ▲전호범=김유선 ▲박영택=김선형·민경숙 ▲김용대=최병국·윤영석 ▲김영정=고경호 ▲한정욱=백영경·이영주 ▲정준모=강영순·장형진씨 등이다.
큐레이터는 작가와 작품세계를 미술사적 관점에서 연구·파악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미술 흐름을 형성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내 미술계는 7∼8년 전부터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 같은 큐레이터 제도가 서서히 도입되었으나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화랑은 물론 일부 미술관까지도 전시기획은 대부분 대표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큐레이터들은 대표들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보조적 기능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서울에서만 50여명이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은 자생적 큐레이터들이다.
이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큐레이터 전문교육기관이나 자격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제도와 유일하게 관련된 홍익대 예술학과가 올해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했으나 그대로 큐레이터로 인정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경우 대학·대학원에서 미술사·미학 등을 전공한 이들을 대상으로 자격시험을 통해 큐레이터를 선발하고 있으며 다시 이를 분야별·등급별로 구분 짓고 있다.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은『최근 들어 화랑의 급격한 증가, 해외미술품 수입개방, 박물관법 개정 등 미술계의 확대와 변혁에 따라 큐레이터제도의 정착과 활성화가 더욱 시급해졌다』고 강조했다. <이창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