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렬 남북회담사무국장 30일 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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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죽으면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 뒷산에 묻혔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30일 남북회담 1세대 중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종렬(李鍾烈.57)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장은 남북회담의 산 증인이다.

李사무국장은 1972년 정규과정 9기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에 입사하면서 남북회담 업무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 후반 통일부 인도지원국장과 기획관리실장으로 잠깐 외도한 것을 빼고는 31년간의 공직 인생 동안 회담운영과장.부장과 기획부장.전략자문위원 등으로 일하면서 남북회담 관련 업무를 해왔다.

"7.80년대 남북회담 분위기는 전쟁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86년 판문점에서 열린 체육회담에서는 우리 측이 신상옥.최은희 납치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자 북측 대표가 탁자위의 성냥갑을 우리 측에 던질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죠. 하지만 이제 남북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남북이 진정으로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지요."

李사무국장은 냉전시대와 탈냉전시대의 남북 회담을 모두 경험했다.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종합상황실장을 맡으며 양측 정상이 손을 맞잡고 웃는 모습을 볼 때는 남북관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고 말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생중계되는 것을 보고 '통일이 멀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71년 8월 남북적십자파견원 접촉 이래 4백43차례 열린 남북대화중 회담 대표에 단 한차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음지에서 실무적으로 일하고 모든 공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며 막후 역할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李국장은 "향후 비정부기구(NGO)의 대북지원 활동을 돕거나 저의 경험을 후배들과 남북관계를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싶다"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민족사업'을 할 생각"이라고 퇴임 후 계획을 밝혔다.그는 지난해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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