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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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탈리아 북쪽,밀라노 근방에 크레모나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주변에 흐르는 맑은 강과 비옥한 평원,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성은 그 마을을 더없이 아늑하게 만든다. 18세기까지 주민은 5만명을 넘지 않았다.
여기가 바로 명바이얼린의 고향이다. 니콜로 아마티(1595∼1684),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과르네리 델 제수(1698∼1744)등 명장은 모두 이곳에서 명기들을 만들었다.
이들 명장의 바이얼린은 몇백년이 지나도록 세상의 어떤 바이얼린도 그 소리를 흉내내지 못하고 있다. 어디서 그런 신비로운 소리가 나는지 모른다. 지난 80년 4월 미국의 뉴스위크지 음악란에는 과학자들이 그 「신비」를 추적한 얘기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명기를 아무리 뜯어 보아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어두운 방에서 연주실험도 해 보았다. 그중에는 몇백년 묵은 고목으로 만든 바이얼린도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리만 듣고도 귀신같이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의 것을 찾아냈다. 명기는 역시 명기였다.
막연한 결론은 그들 명장이 생존했던 시절,그 고장의 기후와 풍토가 특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 자연조건속에서 자란 소나무와 단풍나무(풍)로 바이얼린을 만든 것이 신비의 열쇠라는 것이다. 일설에는 바이얼린에 바른 도료(니스)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시절,스트라디바리가 만든 1천1백개의 바이얼린중 지금 남아 있는 것은 5백50개밖에 없다. 박물관이나 수집가,유명연주자가 갖고 있는 것을 빼면 악기상인들이 거래하고 있는 것은 3백50개뿐이다. 그러니 부르는 것이 값일 수 밖에 없다.
유럽엔 요즘도 돈만 주면 명품에 가짜상표를 버젓이 붙여주는 엉터리 감정소가 많다.
그런 사람들의 눈엔 우리나라가 더없이 좋은 시장으로 비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가짜 「올드 바이얼린」들이 국내에서 엄청난 값으로 거래되다가 꼬리가 밟혔다.
새삼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이 한 말이 생각난다. 명연주자가 되는 길은 끝도 없는 연습과 타고난 소질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기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런 과정은 다 접어 두고 우선 악기 덕이나 보려는 인스턴트예술가 풍조가 결국 가짜 악기를 불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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