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장 첫 인상이 성공 좌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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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과거 해외 출장은 극소수에게 주어진 특혜였다. 견문을 넓히고 오라는 유람의 성격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엔 실무적인 문제 해결을 과제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일이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화의 물결이 거칠게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출장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현안이 무언가 따져보게 된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까지 양보가 가능하고 그 대가로 무엇을 받아와야 하는지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상 공항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 여행 가방에 양복 정장 한 벌을 비롯,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옷가지를 챙긴다.

그러나 출장지가 서양 문화권일 경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그들은 상대의 옷차림으로 그 사람의 능력과 지위를 재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패션에 무감각한 우리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우리가 걸친 옷의 품질을 날카롭게 판단한다.

서양에서는 옷을 얼마나 잘 입느냐가 사회화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옷 입는 방법이 체계적으로 교육된다. 구두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서양의 속담도 있지 않은가. 원하든 원치 않든 당신이 입은 옷은 당신과 당신이 속한 조직, 나아가 국가의 이미지를 결정해버린다.

출장이란 성취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떠나는 여행이다. 그러므로 수트(suits; 상의·하의를 같은 소재로 만든 옷이며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도 공유하는 업무 복장)는 반드시 몸에 꼭 맞도록 준비해야 한다.

적절한 수트를 입었을 때 당신의 말에 훨씬 강력한 설득력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여성복과 달리 남성복 수트를 입는 데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우선 사람들은 대부분 색상, 형태, 무늬의 조합이 모두 고전적이거나 보수적인 수트를 선호한다.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은 오랫동안 대부분 이런 양식을 고수해 왔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한 규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비즈니스 상대가 여성이라면 약간 유행에 민감하게 입어도 좋다.

여성들은 그렇게 입을 때 더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또 폴리에스테르 혼방보다는 가능한 순모의 수트, 순면의 셔츠를 입어야 한다. 셔츠는 몸에 꼭 맞게 입어야 빈틈없고 예리해 보인다. 구김이 가지 않는다고 여행 시 특히 선호하는 형상기억 셔츠는 입지 않는 편이 좋다. 아무리 더운 지역이라도 반소매 셔츠는 금물이다.

하류층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그런 옷을 입을 경우 출장지에서 훌륭한 대접을 기대하기 어렵다. 넥타이 역시 신분을 드러내는 장신구라 세심하게 골라야 한다. 또 시계는 고급 시계를 차라. 없다면 빌리고 빌리지 못하겠으면 아예 시계를 차지 마라. 그럴 경우 불편해서 시계를 차지 않았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기 때문이다.

옷 구겨지지 않게 짐 싸야

짐을 쌀 때 상의의 깃과 넥타이가 구겨지거나 꺾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너무 짐을 꽉 차게 넣으면 그런 일이 생긴다. 한번 꺾이면 호텔 세탁소에서도 쉽게 원상태로 돌려놓기 어렵다. 수트 상의에서 목과 가슴이 닿는 부분의 깃이 꺾이지 않도록 그 안쪽에 양말을 접어 받쳐준다.

또는 바지를 접어 양말 대신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양쪽 깃의 입체적인 형태를 목적지까지 잘 유지하도록 조심하라. 또 수트 상의의 어깨 부분도 너무 눌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넥타이를 가볍게 말아 넣으면 꺾임을 방지한다.

수트를 담는 케이스를 사용하거나 공간이 분리된 가방을 사용하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은 뒤 수트와 셔츠를 옷걸이에 걸어두면 웬만한 주름은 한 두 시간 이면 펴진다.

혹시 당신이 직접 다림질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옷 위에 바로 다리미를 대지 말고 손수건 등 얇은 소재를 대고 다려야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검은색은 특히 다리미에 아주 민감하다.

기내에선 구김 덜 가는 옷 입도록

기내에서는 오래 앉아 있어야 하므로 최대한 구김이 덜 가는 소재의 옷을 고른다. 그런 용도로 Ermenegildo Zegna에서는 Traveller Micronsphere 상품을 개발했다. 또한 기내용 가방에 카디건을 준비하면 좋다.

봄에는 부드러운 감촉의 캐시미어와 실크를 섞은 소재의 카디건은 그다지 무겁지 않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차고 건조한 기내에서 수트 상의는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 드레스 룸에 걸어두고, 편안하고 따뜻한 카디건으로 갈아입자. 또한 카디건은 현지에서 캐주얼 차림이 필요한 경우 편안하게 입으면 된다.

기내에서 신발을 벗어 놓을 때는 준비한 주머니에 신발을 싸서 보관해야 한다. 직항이 아니고 갈아타야 하는 경우는 만약을 대비해 한 벌의 수트와 셔츠, 타이, 양말, 속옷은 기내에 직접 들고 타야 한다.

도착하자마자 상담 일정이 잡혀있는데 짐이 다른 곳으로 보내져 공항에서 찾지 못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만 없지 않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다시 수트 상의를 입는다. 공항에 누군가 마중을 나오는 경우 너무 캐주얼해 보이거나 옷에 구김이진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다.

첫 만남에선 보수적 옷차림이 좋다

첫 만남에서는 말보다 시각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다. 옷차림을 비롯해 표정, 몸짓을 통해 좋은 인상,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출장지에서 소수의 사람과 자주 만나야 할 경우엔 예술가와 같은 자유로운 직종을 제외하고는 가장 보수적으로 입어야 최선이다.

가까이서 마주보는 상담에는 품질이 좋은 소재의 수트를 입고 나가야 한다. 옷감은 단색이나 가느다란 줄무늬가 좋으며 색상은 주로 짙은 회색이나 암청색(미드나이트 블루)이 좋다. 밝은 톤의 회색이나 밝은 청색은 고급스럽지 않아 보인다. 카키색이나 브라운 수트는 가급적 입지 마라.

권력과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 하류층의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편안한 이미지를 주려고 굳이 입어야겠다면 고급스러운 소재를 입어라. 수트의 소재가 평범한 조직이라면 구두는 약간 재질감이 있는 쪽을 권하고 싶다.

장신구도 세심하게 준비하자. 셔츠 소매를 채우는 커프 링스나 시계·펜 등이 세련돼야 하며 보석이 큰 반지는 집에 두고 가는 편이 낫다.

회의 참석 땐 원색 넥타이 피하도록

신뢰감을 주는 보수적인 옷차림이 좋다. 중간 톤의 회색(charcoal gray)이나 암청색 수트가 좋다. 오랜 시간 집중력을 요하는 상황을 고려해 너무 원색적인 타이를 매지 않아야 한다. 수트, 셔츠, 타이가 줄무늬일 경우 가급적 방향을 일치시키되 그중 한 가지 아이템은 무늬 없는 단색으로 가져가야 좋다.

셔츠는 흰색이나 청색이 좋으며, 타이의 매듭은 매듭을 묶기 전에 한쪽으로만 타이를 감아 돌리는 포 인 핸드 노트(four-in-hand knot)보다는 매듭을 양쪽으로 감아 돌려 뭉툭하게 보이는 윈저 노트(windsor knot)가 더 점잖아 보인다. 양말은 앉았을 때 살이 보이지 않도록 길게 올라와야 한다. 유럽에서는 갈색 신발을 세련됐다고 여긴다.

연회에서 드레스 코드 어기면 굉장한 실례

우리는 아직 서양의 연회에 익숙하지 않다. 공무를 수행하는 외교관일 경우는 출장지의 드레스 코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당신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준이 판가름되기 때문이다. 다른 직종일지라도 초대장에 명시된 드레스 코드를 어기면 굉장한 실례다. 블랙 타이(Black Tie) 드레스 코드일 경우 준비해간 턱시도를 입으면 된다.

턱시도는 해가 지고 난 뒤에 입는 신사들의 정장이며, 턱시도를 입는다는 의미는 제복과 마찬가지로 사회규범을 준수하겠다는 선언이다. 가끔 평상시 입는 셔츠에 나비넥타이(보타이)를 매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무지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행위이니 삼가야 한다. 나비넥타이는 윙 칼라 셔츠나 촘촘하게 주름이 잡힌 (pin tuck detail) 셔츠에나 맨다.

동료들과의 가벼운 칵테일 파티라면 세련되게 입어라. 허리선이 강조된 수트나 유행하는 수트도 좋다. 프랑스 식당에서의 정찬 때에는 약간 화려한 색상의 타이와 포켓치프를 해도 좋다. 핑크나 보라색의 줄무늬 수트에 같은 색의 포켓치프를 하면 세련돼 보인다.

집으로 초청 받으면 캐주얼도 무난

오래된 거래처의 집에 초청되었을 경우는 편한 캐주얼 옷차림도 괜찮다.

골프 땐 더워도 반바지는 곤란

필드에서는 상대와 좀 더 쉽게 가까워진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골프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 웨어에 투자하는 만큼 스포츠 웨어에도 어느 정도는 투자하라. 미국 사람들은 폴로셔츠를 입고 편하게 골프를 치는 편이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으므로 날씨가 더워도 반바지 차림은 삼가야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어떤 상표의 골프웨어를 입었느냐를 중시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감각적인 색상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골프장의 색상을 고려해 잔디가 초록색이면 이와 잘 어울리는 흰색·청색·녹색 등의 밝은 색상이 좋다. 잔디의 색상이 베이지로 변하는 시기에는 갈색이나 오렌지색 등이 좋다. 골프룩은 여전히 상류 사회의 상징이다.

방문하는 나라 문화에 맞춰 입어야

해외 출장 시 옷을 선택할 때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든 가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미국 북동부로 갈 때 부자를 만날 경우가 많으니 최대한 고급스러운 복장을 하라. 비싼 맞춤 수트에 고급 시계를 차라.

남부로 갈 경우는 남부 출신이 아니라면 물방울 무늬 타이를 매지 말며, 조끼가 달린 수트를 입지 마라. 남부 사람들은 전통을 중시하고 보수적이다. 유럽으로 여행할 경우는 멋스럽게 옷의 구색을 맞춰야 좋다. 색에 예민한 사람들이므로 당신의 감각을 업무와 연결할지 모른다. 반드시 끈 달린 구두를 신어라.

영국으로 갈 때는 특정 클럽이나 학교 출신이 아닌 사람이 그런 곳의 상징이 든 타이를 매면 대단히 싫어한다. 중국에 갈 때에는 권력은 있으나 돈은 없어 보이도록 입으면 좋다고 한다. 처음으로 가는 나라라면 그 나라의 국내 대사관에 전화를 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물어보면 좋다. 먼저 외국인들이 주로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이냐고 물은 뒤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라.

필자는 출장이나 여행 일정이 잡히면 매일, 상황에 따라 어떤 옷을 입을지 미리 기획한다. 그에 맞춘 액세서리까지도 준비한다. 그리고 약간의 변화만 주더라도 전혀 다른 느낌이 나도록 필요한 옷을 정한다. 여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최대한 짐을 줄이되 필요한 사항을 빠뜨리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금단추 등 장식이 달린 콤비 상의(네이비 블레이저)를 입을 때 회색 바지에 타이를 매면 정중한 느낌이 들지만, 청바지에 입으면 캐주얼해 보인다. 따라서 한 벌로 두 가지 느낌을 주는 아주 유익한 옷이다.

기후 변화가 심한 지역을 다니는 일정이면 계절에 맞는 수트를 함께 준비하자.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두 벌의 수트에 액세서리를 바꾸면 그때 그때 충분히 새로운 느낌을 준다.

가끔 한약을 먹는 기간에 여행해야 할 경우가 있다. 한약을 출장지에 가져가야 한다면 옷과 함께 넣지 말아야 한다. 술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잘못하다가 같이 싼 옷을 모두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약한 마늘 냄새에도 민감하다.

향기가 좋은 애프터 셰이브나 향수를 써야 한다. 향수도 옷의 이미지와 비슷한 제품을 골라야 한다. 담배를 피운다면 악수를 할 때 담배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마지막으로 외국 사람처럼 보이려 하기보다 격조 있는 한국 사람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라. 좋은 이미지는 성공 뒤에 오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이미지야말로 성공에 앞서기 때문이다.

정명숙(남성 패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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