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의영화만담] '보랏' 이 웃기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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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이하 '보랏')는 정말 웃기는 영화입니다. 물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약소국을 비하하고 소수자를 폄하하는 작태가 불쾌하다는 겁니다. 자기 여동생과 프렌치 키스를 나누고, 우아한 저녁 식사 자리에 자신의 '응가'를 싸들고 나타나는 행동은 이 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지요. 게다가 인종차별, 성적 소수자 차별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지켜야 할 금기에 속합니다. 이런 금기를 너무도 가볍게 넘어서는 바람에 '편견에 근거한 화장실 유머'라고 비난받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이 영화가 드러내는 현대사회의 '치부'가 너무 통쾌합니다.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지은 '매너의 역사'(신서원)는 서양인의 일상적 삶이 중세의 야만적 형태로부터 근대의 문명화된 형태로 변하는 과정을 추적한 역작입니다. 중세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을 미천한 백성과 구별 짓기 위해 온갖 '상스러운 것'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발버둥을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지요. 코 풀기 예절, 침 뱉기 예절, 식사 예절, 방귀 예절 등 소위 에티켓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매너의 형성 과정을 역추적한 끝에 엘리아스가 내린 결론. "서양의 역사는 매너의 세련화 과정인 동시에 본능적 충동의 억압 과정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보랏'이 웃기는 이유는 서구 사회 '문명화과정'의 유산을 깡그리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보랏은 문명화되지 않은 '상스러운' 인물의 전형입니다. 중세 이전의 삶, 본능에 충실한 삶, 가식과 위선에 사로잡히지 않은 존재이지요. 지독한 편견의 산물이라는 많은 이들의 비난과 달리 '카자흐스탄에서 온 TV 리포터'라는 설정은 '동남아 순회 공연을 방금 마치고 돌아온'이라는 소개 코멘트만큼이나 가벼운 농담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가장 극단적으로 문명화된 미국식 자본주의,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상을 폭로하기 위해 끌어들인 장치일 뿐이지요.

이쯤에서 '농담 따먹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소)이라는 책을 펼쳐 볼까요.

문: 한 용감한 시민이 한 무리의 흑인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냈다. 어떻게 했을까?

답: 농구공을 던져주었다.

자, 이 우스개가 우습다면 그건 여러분이 자기도 모르게 두 가지 사회적 통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흑인은 집단 성폭행도 충분히 저지를 법한 인종이라는 선입견과, 다른 일엔 무관심하면서 농구에나 미쳐 사는 한심한 족속이라는 편견. 결국 이 우스개는 "흑인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흑인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보랏'의 코미디가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카자흐스탄 TV 리포터의 엽기 행각을 보여 주기 때문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TV 리포터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엽기적인 반응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참 웃기는 영화인 겁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보랏의 황당한 '액션'이 아니라 보랏의 액션에 반응하는 미국인의 당황하는 '리액션'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어서야 어디 웃을 재간이 있나요?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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