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위주 정당공천이 부채질/방법은 없나(돈선거 이대론 안된다: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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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영제·정치자금제도 부실도 한몫/운동규제 완화·시민감시·정치권 자성 있어야
선거망국론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지난 광역선거의 금품타락 현상은 잇단 선거,협소한 선거구외에도 정당들이 돈안드는 선거를 외치면서 사실상 돈선거를 부채질한 탓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당이 앞장서 돈선거를 했다면 야당은 공천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러 결국 금권선거풍조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 시민연대회의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이영희교수(인하대)는 『기존정당들이 깊은 반성없이 돈안쓰는 선거를 외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며 정당참여가 금권타락을 부추겼다고 비난했다.
민자당은 광역후보공천의 우선적 고려사항으로 현금동원능력(5억원이상)을 꼽았었다. 신민당 또한 호남등 일부 우세지역 후보희망자들로부터 특별당비를 징수해 말썽을 빚었다.
여야위원장들의 다수는 후보공천과정에서 추천사례비를 챙겨 처음부터 재력가중심의 후보를 선발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민자당은 특히 중앙당의 지원금 자체가 선관위의 선거공시한도액(평균 3천1백만원)에 거의 육박한 것으로 알려져 중앙당이 앞장서 돈선거를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
민자당은 8백39명의 후보와 2백24명의 지구당위원장들에게 모두 2백여억원의 공식지원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세최고위원이 전국을 순회하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충남·부산의 경우)에 이르는 격려금을 전달했다는 것이 현지 소문들이고 접전지역등 특별관리후보들에게는 별도 지원금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정당들이 이번 선거의 당선실적을 지구당위원장들의 국회의원 후보공천에 반영하겠다는 조건을 제시,당선제일주의를 강요해 결과적으로 금품선거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
이같은 구조적인 원인외에 선거공영제의 미비,정치자금제도의 불합리와 선거운동방법 잘못등 제도상의 문제점과 함께 우리사회의 부패구조와 공명선거에 대한 낮은 민도,부동산투기등 불로소득만연 등도 금권선거의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
선거공영제가 실질적으로 실시돼 돈없는 사람도 당선될 수 있어야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이고 현행 정치자금법도 공개적인 정치자금 조달기능은 현저하게 낮고 음성적기능이 강해 사실상 정치자금의 적절한 규제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투기 등으로 인한 불로소득계층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선거판을 돈으로 도배질하고 금융가명제로 인한 검은 돈이 여전히 음성적인 정치자금으로 변해 금권선거의 젖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선거법상 2∼3회의 합동연설회외에는 일체의 선거활동방법이 제한된 후보자들은 불안한 나머지 돈으로 매표행렬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부후보들의 변명이다.
여기에다 유권자들도 아직 공명선거에 대한 민도가 낮아 유권자들 스스로가 먼저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후보자들의 체험적 고백이다.
서울대 한상진교수(사회학)는 『유권자들이 명분과 실제에 있어 괴리현상을 빚고 있다』며 『유권자들은 금권을 막아야겠다면서도 선거때면 금품을 은근히 기대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금권선거의 근본원인이 치유되지 않고 현추세가 계속될 경우 내년에 잇따라 있을 총선·자치단체장·대통령선거에는 이번 선거보다 더많은 자금살포가 우려된다는 것이 정치권 스스로의 진단이다.
선거비용인플레를 가져올 금권선거는 결국 경제안정의 치명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독소가 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없는 사람은 아예 선거에 나올 엄두를 못내게돼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로막고 음성적인 정치자금 조달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정치타락을 가속화 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민자당은 우선 금권선거를 막기 위해 선거공영제를 전면 확대,▲후보자가 선관위에 내는 기탁금 이외의 모든 선거비용을 국고로 지원하고 ▲유급선거운동원제도를 없애고 ▲TV를 통한 후보자들의 정견발표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민자당안은 선거사무소운영등 후보자 부담의 제한된 경비를 제외한 모든 선거경비를 국고에서 지원,▲후보자의 난립을 야기할 수 있고 ▲국민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비해 신민당은 개인연설회와 정당연설회를 허용하고 합동연설회를 늘려 후보와 유권자의 접촉기회를 확대,근본적으로 금권의 개입소지를 없애고 돈쓴 사람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재 선거법상 쌍벌죄로 돼있어 신고가 안되고 증거수집이 어려운 점을 감안,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처벌면제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은 또 선거과열을 불러올 우려도 있다.
선거는 축제여야 하지만 또한 엄격하게 규율되지 않으면 안된다.
영국·독일등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완벽한 선거공영제로 모든 선거비를 국가에서 부담해주고 있다. 선거는 유인물과 소규모 개인연설회가 전부다.
이때문에 후보자는 따로 돈을 쓸 필요가 거의 없고 영국의 경우 금권선거에 관련된 후보자는 영구히 피선거권이 박탈되기도 한다.
미국은 반공영·반사영제로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사영제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
이곳에서는 정당이 아닌 개인이 선거주체가 돼 후보들이 자기능력에 따라 선거비용을 모금해오면 그 모금액에 비례해 국고보조금을 배분해준다.
대신 모든 선거비용의 지출내용과 모금방법등 선거비용 지출입보고를 주·연방정부선관위에 보고,엄격한 감사를 받고 허위보고가 있을때는 엄격한 형사처벌을 받는다.
임좌순 중앙선관위 선거국장은 『우리나라도 선거비용지출보고가 의무화돼 있으나 대부분 형식적인데다 사후검증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선거자금의 지출은 물론 입금까지도 철저히 규제되고 지출보고서의 일반공개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박찬욱교수(정치학)는 『금권선거를 막기 위해서는 선거공영제 채택과 함께 정치자금등 여·야간의 정치경쟁의 기회공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병규 중앙선관위원은 『법·제도적인 개선과 정치권의 자성과 함께 유권자중심의 감시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며 『특히 유권자들이 금품에 현혹되지 말고 후보자의 정책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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