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중앙부처 국장급들 가게서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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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용답동 아름다운 가게 물류창고 앞. 비옷을 입은 중년 남성들이 5t 트럭에서 큼직한 기증품 박스를 내려 10m 남짓 떨어진 창고까지 나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퀴 달린 수레에 3~4개씩 얹은 박스는 뒤뚱뒤뚱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창고 안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10개월 동안 고위 정책과정 코스를 밟고 있는 중앙행정기관의 국장급(이사관.부이사관) 공무원들. 45개 행정 부처에서 파견된 고위공직자 49명 중 우선 13명이 이날 아름다운 가게에서 하루 봉사에 나섰다.

매장에 배치된 이들에게는 물품 진열과 판매뿐 아니라 지하철역에 나가 아름다운 가게를 홍보하는 일까지 다양한 임무가 주어졌다. 육체 노동량이 많은 물류창고에 자원한 8명에게는 자원활동 초보자들이 주로 하는 기증품 하역과 기증 의류 걸기 일이 맡겨졌다.

탁자 가득 쌓인 기증 의류를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 행어에 거는 작업에 열중하던 김종오(金鍾五) 문화관광부 이사관은 "버려질 수도 있는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며 "자원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운동이므로 전국으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이상용(李相龍) 부이사관은 "10여년 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연수할 당시 동네 교회와 주민자치센터에서 수시로 열리는 중고품 장터를 즐겨 다녔다"며 "선진국에선 이미 정착된 이런 운동을 아름다운 가게가 앞장서 시민운동으로 벌여나가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6년 전 미국 오리건주에서 연수할 때 이웃들이 이사하면서 물품을 처분하는 무빙세일(moving sale), 앞마당에 안 쓰는 물건을 내놓고 파는 야드세일(yard sale) 등에서 생활용품 등을 구입하거나 내다팔기도 했다는 서명범(徐明範) 교육인적자원부 부이사관은 "귀국한 뒤에는 쓰던 중고물품을 팔거나 구입할 기회가 없었다"며 "아름다운 가게 운동이 널리 퍼져 시민의 생각이 바뀌면 우리도 실용적이면서도 환경과 이웃을 생각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hypark@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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