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라, 머나먼 고향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달 22일 인천공항. 휠체어를 탄 세네갈 출신 불법체류 노동자 압둘라(29.얼굴)는 출국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검색대를 통과한 순간 갑자기 몸이 무너져내렸다. 휠체어에서 미끄러지자 항공사 직원이 달려왔고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 한다"며 탑승을 거부했다.

닷새 후인 27일 휠체어에 몸을 묶고 다시 출국을 시도했지만, 또다시 거부됐다. 비행기 고도가 상승하면서 뇌압이 높아져 사망할 수 있다는 이유다. 압둘라는 뇌종양을 앓고 있다. 따라서 안전하다는 진단서가 있거나 의사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압둘라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해 6월 월드컵 때다. 관광객을 위장해 들어와 경기도 내 공장을 전전했다. 일은 고되었지만 매달 일곱명의 동생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부치는 2백달러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데 지난 8월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처음엔 영양실조로 생각했다. 그러다 10월 초 한 시민단체의 주선으로 CT촬영을 한 결과 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그것도 악성 뇌종양이었다. 4시간마다 약물 주사를 맞지 않으면 종양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수일 내 사망하게 된다. 죽음을 감지하고 귀향길에 올랐지만, 이미 온몸에 마비증세가 와 항공사 직원에 '발각'된 것이다.

지난 15일에는 압둘라의 사정을 듣고 일본 세네갈대사관 직원이 한국을 찾아왔다. 이어 17일 MRI촬영 결과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이라는 사실을 알고선 한발 물러섰다.

대사관 측은 "전 세계에 압둘라 같은 국민이 한 둘이 아니다"며 본국 후송을 거절했다.

"비행기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의사가 동반해 약물치료를 받는다면 귀향할 수 있지만, 최소 3만달러가 든다. 교회와 동료들이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이제 수개월 남은 시한부 인생. 압둘라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제생병원 신경외과 병상에서 고향을 꿈꾸며 누워 있다. 안산 소금밭교회 031-486-4757.

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