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식탁’ 언제까지…] 中. 식품범죄 알고도 모른 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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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식품은 시도 때도 없고 대상도 안 가린다.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지난해 식품위생 불량으로 적발된 식품이나 식당 등은 5만8천여건. 하루 평균 1백59건 꼴이다. 그런데도 당국의 단속은 거꾸로 간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단속의 칼날은 훨씬 무뎌졌고 식품위생 분야의 지나친 규제완화도 불법을 부추겼다.

"황산알루미늄을 약간 탄 물에 도라지를 담가두는 게 위험한 줄 몰랐다.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장사한 사람들도 걸리지 않았다. 황산알루미늄을 사용한 지 두세달밖에 안 됐는데 재수가 없어 걸렸다."

경남 창원시 G유통 대표 金모씨는 도라지 색상을 유지하기 위해 황산알루미늄을 사용했다. 폐수처리용 응집제인 황산알루미늄은 출혈성 위장염을 일으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金씨는 운수를 탓했다. 金씨를 비롯한 4개 업체의 불량 도라지 55만kg이 식탁에 올랐다.

◇지자체의 봐주기=총리실 관계자는 "식당 한 곳을 단속할 경우 최소한 4표 이상 떨어지는데 제대로 단속하겠느냐"고 반문했다.

1995년까지 연간 10만건 안팎이던 식품사범 단속 건수는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96년부터 급격히 줄었다. 지난해에는 절반 수준인 5만8천건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식품업소는 70만개에서 96만개로 늘었다.

16대 총선이 있었던 2000년과 제3회 지방선거를 했던 2002년의 단속 건수 감소가 두드러졌다.

서울의 한 구청 단속 공무원 朴모씨는 "선거철에 주차위반 단속 건수가 줄어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2001년 10년 만에 콜레라가 발생해 1백42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수천억원의 피해를 냈다. 진원지였던 경북의 M식당은 6개월 영업정지 기간 중 옷가게로 임대했다가 이듬해 3월 아들 이름으로 개설자 명의를 바꿔 다시 문을 열었다. 식당 주인은 "별 문제 없이 장사가 잘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군이 먹다 버린 스테이크.햄 등을 빼내 부대찌개를 만들어 팔던 서울 용산의 식당 주인도 지난 10년간 미군부대에서 비슷한 행위를 하다 두 차례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약발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김장철 특수를 노리고 중국산과 베트남산 새우젓을 섞어 팔면서 '국산 75% 이상'이라고 속인 경기도 파주시 J식품은 원산지 허위 표시 혐의로 시정명령만 받았다.

법정최고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위생법을 위반해 1심에서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은 2.1%인 36명에 불과했다. 이중 법정최고형(징역 5년)을 받은 사람은 한 명에 불과했다. 2, 3심에서는 아예 없었다.

◇곳곳에 사각지대=단속의 손길이 미미하며 아예 손이 닿지 않는 분야도 많다. 황산알루미늄을 사용한 도라지 업체도 자유업종이다.

동네 수퍼마켓이나 식품점처럼 3백㎡ 이하의 소규모 식품 판매점, 가내 수공업, 재래시장의 식품판매상처럼 농산물을 삶거나 소금에 절여 팔 경우 등은 지자체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 위생검사는 물론 직원들의 건강진단도 받을 필요가 없다.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를 거치면서 규제를 너무 많이 풀었다. 식품위생 분야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선진국과는 거꾸로 간 것이다. 식품 제조 가공업도 서류만 제출하면 세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한다. 위생 상태나 시설 및 인력 현황 등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지도 않는다. 파주시 관계자는 "문제가 터져도 장소가 어딘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대책은 뭔가=보건사회연구원 정기혜 박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청.지자체.농림부 등 8개 부처로 흩어져 있는 단속체계를 단순화하고 식의약청에 행정처분권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나 식의약청의 단속인원을 늘리고 단속업무에 더 오랫동안 근무하도록 여건을 개선해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건강팀), 신성식.이지영.권근영 기자(정책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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