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시위 바로잡기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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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시위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직접 메스를 들었다. 화염병과 새총이 난무하는 폭력시위와 불법 파업의 연계를 끊겠다는 의지다. 그래서인지 18일 발표한 시위문화 4대 원칙은 수위가 상당히 높다.

폭력시위를 벌이면 아예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기조다. 폭력시위자는 범죄자란 얘기다. 정부 출범 때부터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불법 행위라도 요구가 정당하면 귀 기울인다(권기홍 노동부 장관)"던 태도와는 딴판이다.

실제로 그동안 정부는 불법 행위가 있더라도 물밑 접촉으로 해결책을 찾아왔다. 조흥은행원의 불법 파업이나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물류마비 때는 공개적으로 지도부와 협상을 벌였다. 그러고는 그들의 요구를 거의 들어줬다.

이런 정부의 모습은 개별 기업의 노사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사 분규가 나면 기업들은 정부의 코드에 맞춰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공권력의 머뭇거림 속에 노조의 요구를 거부하던 기업들은 장기 파업과 불법 파업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노조의 요구는 곧 임금.단체협약문이라는 웃지 못할 공식이 생겼다"는 기업인의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불법 시위를 협상의 수단이나 카드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기업에 '불법 파업으로 인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일쑤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盧대통령의 초강경 대응이 나온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동계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계 지도부도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들도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노동계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시위가 벌어지기 전에 왜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화로 해결이 안 될 때는 방관하면서, 시위를 벌이면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조건 노동계의 요구사항을 안들어 주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편에선 盧대통령이 밝힌 시위문화 원칙이 일관성 있게 지켜질지 의문이란 견해도 나온다. 예컨대 원전수거물관리시설을 두고 수차례 폭력시위를 벌인 부안 주민, 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여온 농민단체의 경우 과연 이들을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협상을 중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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