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재 개발로 탈 불황 작전-섬유업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천연가죽의 강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냄새·탈색 등의 단점을 없앤 인조가죽이 있다면 소비자는 어느 것을 고를까.
(주)코오롱이 착안해 지나해 말 개발에 성공한 초극세사는 천연가죽을 능가하는 인조가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이다.
최근 섬유업체들 사이에 이처럼 신소재개발을 위한 연구가 한참 진행중이다.
툭하면 사양산업으로 몰려 도매금으로 매도돼온 석유업체들이 자기분야의「첨단」을 찾아 개발에 열을 올리고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옷 색깔이 검게 변하면서 태양열의 흡수량을 높이는 인공지능 섬유가 있는가하면 두고두고 라일락 향기가 솔솔 나오는 넥타이·침구·내의 등에 쓰이는 방향섬유가 개발됐다.
쇠파이프처럼 속이 비어있어 보온성을 높인 중공섬유, 각종 세균과 냄새를 잡아먹는 항균 방취 섬유, 정전기 발생을 없앤 제전석유 등이 우리업계가 최근 들어 개발해낸 석유들이다.
(주)코오롱이 1백억원을 투입, 100년만에 개발에 성공한 초극세사는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로 1g의 길이가 9천km에 달한다.
4·4g만 있으면 지구를 한바퀴 감을 수 있을 만큼 가는 실이다. 도레이 등 일본기업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초극세사를 개발한 코오롱은 다음달부터 경북 구미에 공장을 짓기 시작, 내년 1월부터 연간 2천4백t의 초극세사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초극세사로 만든 인조가죽은 육안으로는 천연가죽과 거의 구별이 안될뿐더러 오히려 부드럽다.
코오롱·제일합섬·삼양사·동양나이론이 개발에 성공한 감온변색기능 섬유는 이름하여 인공지능 섬유다.
대기온도가 5∼8도 이하로 떨어지면 옷 색깔이 저절로 검게 변하면서 흡수된 태양열을 바이오 세라믹이 열에너지로 변화시켜준다.
또한 바이오 세라믹에 의한 원적외선 방사효과로 혈액순환과 세포분자 활동을 촉진시켜 주는 등 일거사득의 효과가 있다는 개발업체의 설명이다.
10여년 전만해도 공상 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신소재 섬유는 또 있다.
라일락·장미·수선화·국화·레몬 등 자신의 마음에 드는 꽃 냄새를 하루 온종일 맡을 수 있는 섬유다.
선경·코오롱·충남방적이 개발한 방향섬유는 섬유표면에 방향제를 넣은 마이크로 캡슐을 부착, 착용 중 마찰에 의해 캡슐이 부서지면서 냄새를 낸다.
특수 수지로 된 직경 4∼9미크론의 마이크로 캡슐을 원단고유의 촉감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표면에 부착시키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현재 국내기술 수준으로는 네번의 물빨래, 7번의 드라이클리닝을 할 때까지 향기를 지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힘들여 개발한 신소재 첨단섬유의 대부분이 아직 양산체제를 갖추지 못하고있다.
코오롱의 한 관계자는 『인공지능 섬유나 방향섬유의 경우 양산에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은 갖췄으나 생산원가가 비싼데다 수요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아 공장건설을 늦추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원단이 평방 야드당 8백∼1천원인데 비해 변색·축열·투습방수 기능 등을 모두 갖춘 인공 지능원단은 1만원에 달한다.
변색기능만을 갖춘 원단은 8천5백원에 이른다.
결국 신소재 개발도 중요하지만 업계와 정부가 힘을 합해 이를 제품화, 양산화 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는 일이 더욱 시급한 실정이다.
일찍이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이라며 사실상 포기한 일본의 경우 지난 80년 7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대외섬유류 교역이 9년만에 97억6천만달러의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섬유산업을 정부차원에서 적극 육성한 이탈리아는 같은 기간 중 37억달러 흑자에서 95억달러의 흑자로 폭을 넓혀놓았다.
국내 석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멍에에서 빗어나려면 이탈리아가 걸어온 길을 뒤따라 밟아야 한다는게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연홍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