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짭짤하지만 불량품 파동에 착잡-레미콘 운전기사 김두억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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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경기도 안양시 본사에서 평촌 신도시 건설 현장까지 레미콘차를 운전하는 아세아 시멘트공업 소속 김두억씨(56)는 요즈음 마음이 착잡하다.
최근 불량레미콘 파동으로 멀쩡히 올라가던 아파트를 때려부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러려니와 그 동안 동료 레미콘 기사들이 「불량품」을 열심히 날라다 준 꼴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의 컴퓨터 조작 미숙이 발단이 된 소동이라기에 동정도 가지만 사람 누워 자는 집을 짓는데 너도나도 정신 바짝 차리라는 좋은 교훈이 된 것 같습니다.』
20년 넘도록 레미콘차만 몰아 왔지만 이번 신도시건설처럼 엄청난 공사는 처음이라는 김씨는 이렇게 큰 공사를 당국이건, 건설회사건 무작정 공기 맞추기에만 급급해온 결과가「부실」「불량」으로 나타났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바닷모래로 인한 이른바「백화현상」만 해도 골재가 없는데 이 모래 저 모래 가릴 여유가 있겠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어쨌든 신도시건설경기 과열 속에 레미콘회사나 김씨같은 레미콘 운전기사들은 요즘벌이가 좋긴 좋다고 한다.
레미콘회사가 건설회사의 「상전」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운전기사들도 건설회사로부터 『잘 봐달라』며 「행차료」까지 얹어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씨만 해도 요즘 하루 평균 7번 레미콘을 날라다주고 l5만원정도 받으니까 한달이먼 4백여만원, 이중 레미콘 임대료 등 이것저것 제해도 월1백50만∼2백만원의 수입은 거뜬하다고 한다.
『90분이면 굳어버리는 레미콘을 싣고 멀리 떨어진 공사장을 찾다 교통이 막힐 때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합니다.』
육군상사로 15년 군대생활을 마치고 「달리 배운 것이 없어 70년부터 줄곧 레미콘 운전대만을 잡아온 김씨는 갓 쏟아 부은 콘크리트의 색깔만 봐도 시멘트가 얼마나 섞였는지, 골재는 좋은 것을 썼는지 금세 알아볼 정도로 「귀신」이 됐다.
김씨가 그 동안 터득한 나름대로의 철학이라면 『콘크리트는 빈틈없고 정직하다』는 사실이다.『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 정직하지 못하고 빈틈을 보여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글 홍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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