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주술」에 사로잡힌 사회/유승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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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름 석자만 대면 누구나 알만했던 한 피부과 의사가 레지던트를 채용하면서 거액을 받아 챙겼고,온 국민의 연금을 관리하는 기관의 책임자가 뇌물을 받고 기관건물을 부당한 가격으로 매입한 사실이 보도된 같은 날,한 신문의 독자투고란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가 실렸다.
한 시국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는 고려대 법대생의 어머니가 소식없는 아들에 대해 애타는 심정을 적으면서 수배해제를 호소한 내용인데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평소 나는 법대생인 아들에게 졸업하기 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했는데 그 아이가 3학년이 된 어느날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머니,아무래도 사법시험 보는것은 뒤로 미뤄야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우선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생각을 갖도록 깨우치는 일을 하겠습니다. 명예와 권력을 탐내지 않고 돈이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해야 인신매매라든지 살인·강도 같은 것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 학생이 구체적으로 왜,그리고 어떤 행동으로 실정법을 어겼는지는 알 수 없다. 앞의 두사건이 이 어머니의 투고와 같은날 보도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다. 그러나 그 내용적 문맥으로 볼 때 두 사건과 투고된 내용에 나타난 학생의 행동은 결코 우연일 수 만은 없다고 여겨진다. 마치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사회에 부정과 비리가 만연되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수배학생이 취한 행동과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일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갖가지 일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부정과 비리는 분명히 수배학생이 한 것으로 짐작되는 격렬한 반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점을 우리들은 소홀히 보아 넘겨서는 안될 것이다.
남부럽지 않은 지위와 명예를 누려오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이 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돈이 무엇이며 돈에 대한 사람들의 그 신앙적 숭배는 어디에서 유래되는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들은 동료에게 한턱 쓰기를 꼬드길때 흔히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돈 아껴서 뭐 하나. 죽은 다음에 관해 넣어 갈건가.』
우리들,평범한 사람들도 물질의 덧없음을 잘알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너나없이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몇푼의 돈때문에 수십년의 우정을 하루아침에 깨뜨리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이 원수처럼 갈라서기까지 한다.
이러한 욕망은 타고난 것일까.
이는 명쾌한 결론이 나기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이겠지만 타고난 것이든 아니든 그것을 강화하고 조장하는 것은 사회구조때문이라는데 다른 의견이 없다. 이미 거의 1세기전 미국의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재산을 소유한 것이 사회적 존경의 바탕이 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자기만족의 필수조건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사회구성원들은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정신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자신의 부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기와 대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부에 대한 욕망은 근본적으로 남보다 우월한 명성을 얻기위한 경쟁에 바탕을 둔 것이어서 그 기준에 도달했다해서 완전한 만족감이 얻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에 도달하는 순간,새로운 경쟁목표가 떠오르게 마련이며 더욱 이 사회의 총체적 부가 증가함에 따라 부족감은 오히려 증폭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충분히 나눠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부가 형성되어도 부에 대한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러한 전형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근래 우리들은 권세나 명예와 같은 사회의 모든 가치들이 돈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가하는 것을 실감할대로 실감했다. 의원뇌물 외유사건,수서비리,음대입시부정사건 등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사회의 모든 가치가 돈으로 저울질 되고 모든 것이 결국 돈문제로 환원되고 마는,돈의 주술에 꽁꽁 사로잡혀 있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인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지배하는한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운명에 직면할 것이다. 모두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에 나서거나 체제자체를 부정하려는 투쟁에 뛰어들거나 하는 것이다.
이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면 우리들은 먼저 부에 대한 욕망이 결코 충족될 수 없으며 그것이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교우위를 차지하려는 허망한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부가 우리들 삶에 있어서 필요조건은 될지 언정 결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미 우리들은 너무도 때가 묻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의 자식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그들에게 우리들은 돈이상으로 우리가 존중할 가치가 얼마든지 있음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때 우리들은 앞으로도 부정사건으로 수갑을 차는 아들을 보거나 생사조차 알길 없이 가슴에 못을 박는 아들을 보게 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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