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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평생 함께 살려면 '질병 가계도' 그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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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나이는 성인이 된 뒤 처음 맞는 건강 분수령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데다 결혼을 하면서 부모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젊고 패기가 있어 건강상 별문제는 없지만 직장 초년병으로서, 그리고 새내기 신혼부부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스트레스를 강요한다. 생활패턴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것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직장생활로 회식이 잦아지고, 신체활동량은 줄어 비만이 시작된다. 여성은 임신.출산으로 인체 생리의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인생 롱런을 위한 30대 건강 포트폴리오를 짜보자.

◆질병 가계도를 그려 보자=건강설계의 기본 원칙은 발병 가능성을 줄이는 데서 시작한다. 부부가 백년해로를 하기 위한 첫째 수칙은 질병 가족력을 살피는 것이다. 대다수의 암과 성인병,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조차 대물림하기 때문이다.

우선 조상의 사망 원인을 중심으로 한 가계도를 그려 보자. 부모의 형제.자매는 물론 조부.조모가 어떤 질병으로 고생을 했고 사망했는지 기록한다. 이때 돌아가신 나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젊은 나이에 암과 같은 위중한 질병이 발생했다면 유전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장암이나 유방암.난소암 등이 대상이지만 위암.간암.뇌종양.백혈병.전립선암 등 모든 암을 포함한다. 간암은 유전력보다는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위암은 헬리코박터균이 자녀에게 전파돼 장기적으로 발암 가능성을 높인다.

고혈압.고지혈증.관상동맥질환 등 성인병도 물려받는다. 위험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 나쁜 생활습관과 연결되면 발병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것이다.

전체 암 중 유전성 암에 걸리는 환자는 5~10% 정도다. 특히 선대의 형제나 자매가 암환자이고, 50대 이전 암에 걸린 기록이 있다면 발암 가능성이 크다. 암은 우성 유전인자를 통해 내려오므로 부모 중 한 명이 암환자일 때 자녀가 암에 걸릴 확률은 50% 정도다. 해당자는 대학병원급에서 운영하는 암 유전자클리닉을 이용해 유전성 여부를 조사하면 된다.

◆습관을 분석하자=습관은 평생 건강에 얼마나 중요할까. 미국의 한 조사기관이 75세 이전 사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유전 20%, 환경 20%, 의료서비스는 8%이었는데 생활습관은 52%에 달했다. 질병별로는 암은 37%, 당뇨 34%, 뇌졸중 50%, 교통사고 69%, 알코올성 간염에는 무려 70%가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암을 포함한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으로 부르는 이유다.

습관은 어릴 때부터 형성되지만 인생 초년병 시절엔 또 다른 습관이 만들어진다. 칼로리 높은 외식이 가정식보다 많아지고, 음주문화와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따라서 30대 건강설계를 할 때는 나쁜 습관 목록을 만들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금연을 하는 사람은 식사 뒤 식탁에서 빨리 일어나 이를 닦는다거나 무료할 땐 당근이나 셀러리를 씹고, 친구에게 전화하는 식의 행동 수칙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행동수칙을 정하고 건강 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젊은 사람도 건강진단을=발병 가능성의 80%는 생활습관과 가족력을 파악하면 근절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는 건강위험 요인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마지막 수단이 건강진단이다.

흔히 건강진단 하면 40대 이후 중년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세대별로 필요한 검진항목이 있다. 예컨대 30대 남성은 B형.C형 간염바이러스 여부, 성병 과거력, 관상동맥질환, 간기능(혈액.초음파)검사, 신부전(소변) 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여성은 골밀도 검사와 함께 빈혈, 갑상선, 자궁경부 세포진 검사가 요구된다. 우울감이 있는 여성은 우울증 선별검사를 받는 것도 바람직하다. 목적은 조기 발견, 조기 치료다. 임신을 앞둔 여성이라면 풍진 백신은 필수. 임신 중 풍진에 걸릴 경우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건강 위험 평가에서 마지막 단계는 환경적 요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직업병도 미리 알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극복하자

아내 암 유전력 있어

암 조기발견 위해
매년 검진받아야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에 자신의 건강은 항상 뒷전인 여성들. 지금까지 아파본 일이 없는 김은주(가명.30)씨도 대다수 보통 여성과 마찬가지로 병원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직장에서 받은 건강진단이 전부다.

결과는 생각했던 대로 우려할 만한 질환은 없었다. 성인병을 나타내는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나 유방.갑상선 검사 결과도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상담의사는 그녀에게 '옐로 카드'를 제시했다. 그녀의 이모가 45세 때 난소암으로 사망했고, 어머니 또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 암 가계력은 그녀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또 하나는 골감소증. 골다공증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골밀도가 64%로 할머니 수준으로 나타났다. 대학생 시절부터 운동은 하지 않고, 초소식 다이어트를 한 결과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마른 비만도 지적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엔 비만한 것 같지 않지만 근육 대신 지방이 꽉 차 있는 것. 이런 비만형이 50대 폐경기를 맞으면 여성호르몬이 급감하면서 피하지방이 내장지방으로 바뀌고, 그 결과 당뇨병과 고혈압 등 성인병을 유발한다.

◆건강 설계=건강장수를 위해선 암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특히 가족 중에 유전력이 있는 암 환자가 있다면 이른 나이부터 암 조기발견에 유의해야 한다. 김씨에겐 암유전 클리닉에서 유전인자 검사와 함께 암 검진을 매년 받도록 권고했다. 특히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유력한 발암 요인이다. 따라서 성관계가 시작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매년 자궁경부 세포진 검사를 받아야 한다. HPV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백신을 맞는 것도 방법이다. 골밀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생활요법으로 하루 우유 두 잔,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특히 덤벨과 같은 중량 운동(웨이트 트레이닝)은 필수. 근육을 만들어줘 마른 비만을 해소할 뿐 아니라 뼈를 자극해 뼈 세포를 늘려준다. 건강한 자녀를 낳기 위해 풍진(임신 3개월 전).B형 간염 검사.결핵 등도 점검할 것을 권유했다.



남편 고혈압·당뇨 위험

담배는 당장 끊고
체중도 꼭 줄여야

남편 정성모(가명.33)씨는 대표적인 성인병 예비군이다. 청소년 비만이 그대로 이어져 현재 키 172㎝에 체중 82㎏인 그의 체질량지수(BMI)는 28. 비만 기준(25)을 훨씬 초과했다. 지방간에 고혈압과 당뇨병 전 단계인 대사증후군 진단도 받았다. 문제는 직장을 핑계로 나쁜 습관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나쁜 습관 1호는 흡연. 결혼 뒤 잠깐 끊었지만 요즘엔 하루 1갑 이상 흡연량이 늘었다.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흡연을 계속할 경우 그는 50대 이후 폐암을 비롯해 구강암.신장암.후두암.췌장암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동맥경화와 흡연은 불과 기름의 관계. 탄력성이 떨어진 혈관이 찢어지면서 혈전이 만들어질 경우 뇌졸중.심근경색 등 40대 돌연사의 주인공이 된다.

둘째는 '두주불사형'이란 점. 여기에 영업이란 업무 특성상 술자리가 많다. 장기간의 과도한 음주 역시 평생 건강의 적이다. 비만, 간기능 이상, 대사증후군을 야기할 뿐 아니라 술과 암 간의 관계도 밀접하다. 간암.대장암.전립선암.유방암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셋째는 잦은 야식과 회식에도 불구하고 운동과는 벽을 쌓고 지내는 것. 그는 오전 7시30분 집에서 나와 거의 온종일 차를 몰고 다녀 기본적인 걷기 등 신체활동량이 거의 없다.

◆건강 설계=요즘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 많다. 동맥경화에 의한 심근경색과 뇌졸중으로 쓰러질 위험성을 안고 산다. 정씨의 아버지는 현재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고, 어머니는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조부 역시 중풍으로 고생한 것을 그는 기억한다. 혈관질환 가계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겐 복부 비만을 해소하고, 혈관 나이를 줄이라는 의사의 조언이 따랐다.

정씨는 아직 젊기 때문에 당장 담배를 끊는다면 5년 뒤 그의 혈관은 흡연 전 상태로 돌아간다. 알코올 해독도 마찬가지다. 서너 달만 술을 자제하면 그의 간기능을 보여주는 GOP.GPT 수치가 정상(40 이하)으로 떨어지고, 알코올성 간염.위염.지방간이 크게 개선된다. 의사는 그에게 6㎏의 체중 감량과 함께 운전 시 반드시 안전띠 매기, 스트레스 관리 요령, 균형 잡힌 식생활을 건강설계에 포함시키도록 권했다.

◆특별취재팀=고종관 기자(팀장)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도움말 주신 분:아주대병원 유전질환센터 김현주 교수, 건국대병원 조희경 교수, 한림대 성심병원 박경희 교수, 서울아산병원 선우성 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은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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