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끝났지만 문제는 여전/강진권 사회부기자·부산(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5월6일 입원중이던 경기도 안양병원에서 숨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가 경남 양산 솔발산 공원묘원에 묻힌 것은 사망 55일만의 일이다.
사망을 둘러싸고 제기된 갖가지 의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지난달 29일부터 진행된 박씨의 장례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가족과 노조측이 유가족 보상문제 해결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며 거부하는 바람에 한때 지연되는등 우여곡절끝에 가까스로 치러졌다.
시체부검을 전후해 제기된 사망원인 규명요구로 상당기간 진통을 겪었던 박씨 장례식은 부산시청앞 노제예정시각인 30일 오후 1시35분까지도 유가족과 한진중 노조측이 자신들의 요구를 회사측이 받아들이지 않는한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무기연기되는 듯했다.
유가족과 노조측이 장례선결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유가족에 대한 회사측의 보상과 노조원 31명에 대한 회사측의 고소·고발취소 및 1억2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하,50여일 파업기간의 임금지급 등 네가지.
박씨이 사망으로 비롯된 이런 문제를 두고 유가족·노조측과 회사측은 서울에서 세차례에 걸친 협상을 가졌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해 이들 문제는 운구행렬과 함께 부산까지 따라왔으나 부산에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양측간의 협상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아 박씨의 시신과 함께 묻히지 못했다.
정작 박씨의 죽음을 불러온 노사간의 문제는 그가 묻히고서도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못한채 그대로 남은 것이다.
노조는 그들의 주장처럼 조합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노조위원장에 당선돼 민주노조 건설과 조합원 처우개선 등에 희망을 주었던 박씨의 죽음이 안겨준 좌절감이 엄청나다 하더라도 위원장의 시신을 담보로한 회사측과의 협상요구는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도리는 아닐 성 싶다.
또 노조에 대한 불만이 있다손 치더라도 회사 간부들이 단 한명도 장례식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노조·유가족이 요구한 협상의 자리마저 마련하지 않은 회사측의 처사도 위원장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노조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박씨의 죽음이 불러온 50여일간의 장기간 조업중단등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진중공업이 박씨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당장 해야할 일은 노사간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정상조업에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