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누군가는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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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에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라크 파병 규모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고,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 등이 워싱턴에서 3천명 파병을 미국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한창 관심을 끌던 시기였다.

간담회에서 盧대통령은 "대통령도 모르는 (3천명) 파병 규모를 언론이 어떻게 알았는지 유감"이라면서 " 중요한 문제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보도되면 안 된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그즈음 워싱턴에선 한국대표단이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차례로 만나 '대통령도 모른다'던 파병 규모를 미국에 통보하고 있었다. 정통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통보내용은 ▶파병 규모는 서희.제마부대를 합쳐 3천명선▶4월말까지 배치 완료▶파병 지역은 가급적 남쪽(나시리야 언급)이라는 3개 사항이다. 소식통은 "당시 한국 대표단 사이에 이견이 있었지만 李차관보는 "우리 입장만 정확히 하자"고 밀어붙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와중에 盧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자 미국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대표단이 파병 규모와 시기.장소를 통보하고 있는데 한국 대통령이 "확정되지 않았다""규모는 대통령도 모른다"고 하니 뭐가 진실인지 뒤죽박죽됐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외교통상부는 "미국에 파병 규모를 통보하러 간 게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도 불과 며칠 뒤 워싱턴서 귀국한 李차관보가 "3천명 규모를 제시했다"고 시인해 우습게 뒤집혔고 청와대 대변인도 뒤이어 '3천명선'을 확인했다.

한.미 협의가 진행 중임을 뻔히 아는 대통령이 그같이 발언을 한 데는 알 수 없는 사정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왜 그렇게 혼란스럽게 일을 하는지는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