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름으로' 여성 학대 막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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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당신은 여성을 비하하거나 불편하게 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여성에게 함부로 대하고 나서 그런 행동은 그녀의 잘못 때문이라고 우긴 적이 있습니까?'

보통의 남성들이라면 '없다'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한국의 가부장적 남성문화를 양성평등 문화로 바꾸는 데 앞장서온 '딸사랑 아버지 모임(이하 딸사모)'회원들은 이런 일들도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이라고 단언한다.

딸사모가 '대(對)여성폭력 추방운동'에 나섰다.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리본을 가슴에 달고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며 못본 척 침묵하지도 않겠다고 벼르고 나선 것이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딸사모의 정채기(강원관광대학교수)회장은 "캐나다 등 전 세계 25개국에서 전개되는 하얀리본운동에 동참해 한국에서도 여성과 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얀리본운동은 캐나다에서 유래했다. 1990년 몬트리올의 한 공과대학에서 어느 여성혐오주의자가 총기를 난사해 여학생 14명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주년 추모행사에서 몇몇 남성들이 하얀리본을 달기 시작하면서 여성폭력추방 운동이 시작됐다.

여기에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학 교수이자 국제적인 NGO운동가인 마이클 카프만이 동참하면서 운동은 들불처럼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현재는 영국.스페인 등 유럽국가를 비롯, 미국.브라질.일본.인도 등의 국민이 총격사건이 났던 11월 25일을 전후해 하얀리본을 가슴에 단다.

딸사모 회원인 최정기(45.기업교육강사)씨는 "성폭력 발생률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둘째로 높고 가정폭력 또한 아내의 70%가 남편으로부터 맞은 적이 있다는 통계를 봤다"며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하얀리본운동은 오는 19일부터 나흘 동안 계속된다.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남성 및 아버지의 반(反)폭력선언'을 하고 가두행진과 거리 캠페인을 벌인다. 딸사모 회원 이경수(48.건설업)씨는 "일반 시민들에게 하얀 리본을 나눠주며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카프만 교수를 초빙해 건국대.숙명여대 등과 경기도 하남시 하남고등학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등에서 특별강연도 연다. 특히 대학로에서는 연극 연출가로 활동 중인 딸사모 회원 김완규씨가 만든 연극이 공연된다. '부메랑'이란 제목의 연극은 아버지.남편에 대한 과도한 역할이 스트레스를 낳고 이것이 여성에게 폭력으로 행사되는 상황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딸사모 회원들은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다음의 일을 권한다. ▶여성이 겪은 폭력에 귀를 기울여라▶왜 남성들이 폭력을 휘두르는지 공부하라▶성 차별적인 언어와 농담에 대해 항의하라 ▶직장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성희롱을 지적하고 이를 반대하라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는지 분석하고 행동을 바꾸어라 ▶ 그리고 아들과 소년을 평화적으로 기르는 데 참여하라 등이다.

2001년 창립된 딸사모는 '존경받는 아버지.평등한 남편'이 될 것을 다짐하며 발족한 남성단체다. 초창기 김병후 신경정신과의사, 방송인 김종찬씨 등 유명인사가 주축이 됐다가 최근 들어선 '평범한' 아버지 70여명이 주로 활동하고 있다.

꾸준히 포럼을 열어 '새로운 아버지상'을 모색해 왔으며 지난해엔 '딸.아들 평등사랑 아버지 페스티벌'을 열어 아버지와 함께 하는 요리천국, 의사소통 게임 등 행사를 가졌다. 올해도 30일 오후 1시 서울 구로여성인력센터에서 두번째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폭력 체크 리스트>

- 배우자나 애인의 뺨을 때리거나 움켜잡은 적이 있는가?

- 배우자나 애인이 당신을 무서워한 적이 있는가?

- 배우자나 애인과의 관계에서 대부분의 결정을 당신이 하는가?

- 배우자나 애인의 물건을 일부러 망가뜨리거나 부순 적이 있는가?

- 가족을 학대한 것에 대해 감추려 하는가?

-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을 무서워하는가?

- 여성을 모욕하거나 비하하거나 불편하게 한 적이 있는가?

- 여성에게 욕한 적이 있는가?

- 여성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압력을 가한 적이 있는가?

- 여성에게 함부로 대하고 나서 그런 행동은 그녀의 잘못 때문이라고 여긴 적이 잇는가?

- 여성에게 잘못하고 나서 술.스트레스.가정문제 탓이라고 핑계를 댄 적이 있는가?

※만약 답이 '그렇다'라면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임.

출처=캐나다 '화이트리본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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