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독일·이탈리아·인도와 연쇄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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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새해 들어 부쩍 분주해졌다. 이번 한 주 동안 이틀 간격으로 독일.이탈리아.인도 등 3개국 정상과 연쇄적으로 회담을 한다. 에너지 문제가 핵심 의제다. 푸틴 대통령이 에너지 공급국의 지위를 십분 활용, 국제외교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숨가쁜 외교 행보=푸틴 대통령은 23일 흑해 연안의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에서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프로디 총리는 "에너지는 양국 관계의 기반을 이루는 주요 협력 분야"라며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과 이탈리아 국영석유회사 ENI 간의 협력을 증진하는 협정이 조만간 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몇 개의 이탈리아 회사가 러시아 에너지 분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가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러시아는 이탈리아에 자원 공급을 확대하는 윈-윈 협력에 양국 정상이 합의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2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도 에너지 문제를 주요 의제로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메르켈 총리는 최근 러시아가 벨로루시와의 에너지 분쟁으로 유럽으로 가는 석유 공급을 일시 중단한 사태와 관련,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자로서의 신뢰를 파괴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푸틴은 "옛 소련 소속 국가들에 대한 에너지 가격 인상은 (모든 수입국에) 공통적이고 투명한 규칙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벨로루시나 우크라이나 송유관에 대한 의존 비중을 줄여 나갈 것"이라는 구상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5일 인도도 방문해 인도국영석유개발공사(ONGC)가 러시아 자원 개발에 참여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에너지.국방.우주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강대국 지위 회복이 목표=푸틴 대통령은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한 뒤 현재의 국제정치 상황과 관련해 뼈 있는 말을 했다. 그는 "국제무대에는 러시아의 합법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며 "그러나 러시아는 스스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양극 체제가 무너진 뒤 일부에서는 일극에서 모든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마저 생겼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러시아는 세계가 균형 잡히고 다극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유일 체제에 대항해 러시아의 독자적 목소리를 높여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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