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락 <부산시 남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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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광안동에서 대신동 관사로 옮겨오기 얼마전만 해도 내게 「단골」이란게 있었다.
남천동 3의58 「미락」 (624-2515)이란 3평 남짓한 1층의 생선구이 전문인 이 집은 볼락·청어구이가 특매였다.
청어구이도 즐기는 편이지만 볼락구이는 한층 더 내 입맛을 돋우는 메뉴였다. 4, 5월 보리누름에 살오른 볼락의 맛도 맛이려니와 가을로부터 겨울에 이르는 산란전의 구이 맛은 감칠맛 나는 별미다. 생선맛도 맛이지만 적외선 불, 석쇠 위에 얹힌 생선이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동안의 그 고소한 냄새부터가 내 후각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주문하고 생선이 익는 동안 소주나 청주 한잔을 앞에 두고 앉았노라면 서서히 이집 분위의기가 몸에 젖어온다. 유별날 것도 없이 깔끔하다기 보다 차라리 수수하게 꾸며진 이곳, 무엇이 나를 단골로 주저앉혔을까.
6년째 이 집을 경영해 온다는 주인 김 여사의 근면함과 은근한 접대 외에 종업원 손군의 그 매끄럽잖은 어눌한 말솜씨 또한 구이맛 그것이었다.
생선구이의 참 맛은 고기의 신선도에서 온다며 제 구이솜씨보다 재로에다 더 비중을 두는 그 겸허함이 내 구미에 맞았다고 할까.
값도 저렴했다. 중치 서너 마리의 볼락1인분이 5천원, 청어구이 1인분이 4천원 미만, 여기에 소주 한 병으로 족하고 보면 2, 3인분을 시켜먹어도 2만원 안쪽이니 그만이다.
손님이라야 열대여섯이 앉으면 꽉 차버리는 공간에 내로라 과시하는 꼭지 덜 떨어진 사람도 없고, 소란스럽지도, 들뜨지도 않으니 여간 정겨운 곳이 아니다.
그저 수수한 차림의 중년들이 태반. 어쩌다 바다를 거닐다 들르는 아베크족의 싱싱한 젊음이 바닷바람을 쏟아놓고 가곤 했다.
남구청 뒤쪽 광안리 해수욕장을 끼고 앉은 바다가 빤히 내다보이는 「미락」에서 볼락과 청어의 담백무잡한 구이맛을 음미하며 또한 사람의 향기까지 맛보았었다.
이제 훌쩍 자리를 옮기고 보니 4∼5년 드나들었던 단골도 그만 멀어지고 말았다.
언제고 틈을 내 뜻맞는 벗님과 더불어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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