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로잡힌 영혼」현대감각 살린 파격의 연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사랑의 연극잔치」막바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국립극단의 『사로잡힌 영혼』이 「국립」의 무게를 떨쳐낸 파격의 수작으로 호평받고 있다.
『사로잡힌 영혼』은 조선후기의 대표적 화가인 오원 장승업의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 「예술혼」의 순수성을 다루면서도 이 연극은 예술혼 추구의 진지함과 재미를 듬뿍 담아냈다. 재미는 현대적 감각의 파격적 형식에 담겨있다.
그 공은 상당부분 젊은 여류연출가 김아나씨 몫으로 평가된다. 실험극장의 화제작 『에쿠우스』를 새롭게 해석, 제필니 「에쿠우스 붐」을 일으켰던 김씨는 남산기슭에 웅크리고 있던 정통파이며 권위에 가득찬(?) 국립극장 남자배우들을 들쑤셔 그들의 잠재력을 되찾게 했다.
얘기는 간단하다. 오원이 그림솜씨를 인정받아 「도화서감찰」벼슬을 받았으나 궁중생활의 거추장스러움에 자꾸만 도망친다. 임금이 도망치는 이유를 묻고 이에 오원은 자신의 예술혼을 얘기한다. 예술혼을 찾기 위한 오원의 구도행각이 드라마로 펼쳐진다.
김씨의 연출은 단순한 줄거리에 힘을 불어넣는다.
출연자 15명이 모두 남자배우며, 이들은 여느 공연처럼 무대 뒤로 숨지 않는다. 시종일관 무대 위에 머물면서 변신을 거듭한다. 이들은 무대 안목에 일렬로 앉아 북을 두드린다. 북은 효과음이며 소도구로서 남성의 힘을 느끼게 한다. 자기 역할이 돌아오면 어느덧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은 남자배우들이 무대전면으로 뛰쳐나오며 연기한다. 연기가 끝난 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껑충껑충 뛰는 동작으로 힘을 더한다. 심지어 여자역(작부)도 남자배우가 맡아 이색적이며 코믹하다. 10여명이 40여명의 배역을 매끄럽게 소화해내는 순발력도 국립극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활력을 느끼게 한다.
스크린 영상은 더욱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로 다가온다. 첫 장면에 질주하는 말의 영상이 클로스업 돼 나타난다. 오원이 옷을 벗어 흔들며 말을 쫓는다. 질주하는 말의 역동감이 오원의 자유분방한 예술혼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물론 주인공 신구씨의 중후한 연기와 배우들의 끈기있는 연기자세도 돋보인다. 방송작가로 첫 희곡을 쓴 이상현씨의 동양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 큰 힘이었다. 23일까지 평일 오후7시30분·주말오후4시 국립극장소극장.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