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총수도 수사대상" 검찰 기업압박 초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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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을 향한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초(超)고강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출국금지는 검찰이 기업의 총수까지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具회장의 출금이 물론 사법처리로 이어짐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출국금지는 원활한 수사 진행을 위해 언제든 소환조사를 할 수 있도록 국내에 머물게 하는 조치다. 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재계 2위 그룹의 총수도 손댈 수 있다는 점을 기업들에 알리는 효과는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검찰은 LG와 삼성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S회계법인과 현대차 등을 맡은 A회계법인에 수사관을 보내 회계 관련 자료들을 제출받았다. 하지만 유독 이들 기업에 대한 움직임이 포착된 것일 뿐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도 거의 엇비슷한 진도로 수사를 진척해 가고 있다.

현재 검찰의 움직임으로 봐선 수사 범위가 무한정 확대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도 스스로 "일단 드러난 것은 그냥 덮지 않겠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대선자금으로 시작된 수사가 기업들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수사로 확대될 개연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검찰은 애초 기업 수사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자금을 푼 쪽인 기업들이 자료 제출 등의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돈을 받은 쪽인 정치권은 오히려 검찰을 흔들어대기 바빴다. 검찰로서는 강수(强手)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검찰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기업들의 긴장 상태도 팽팽해지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검찰이 세게 조여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며 "요구하는 대로 관련 자료를 최대한 제출하고 임직원들도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렇지만 향후 수사는 불법 대선자금에 집중되고 기업의 비리 부분은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너무 크게 벌여 놓으면 수습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2일 대구 고.지검을 방문한 송광수 검찰총장이 수사 장기화에 대한 우려를 언급한 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이 아직 유효함을 내비친 셈이다.

◆한나라당 대선자금 뚜껑 열리나=그동안 소환을 거부해 온 김영일 한나라당 의원이 14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사실상 덮여 있던 이회창 후보 측 대선자금의 실체가 얼마나 드러날지 주목된다. 그동안 노무현 후보 측의 자금 내역은 이상수 의원 등의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최돈웅 의원이 사실상 잠적하고, 자금 담당자들도 수사에 비협조적이어서 '일단 멈춤'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기업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한나라당이 SK 외의 기업에서도 불법 자금을 받은 단서들을 여럿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의원에게서 SK 1백억원 관련 자료 폐기를 지시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도 성과다.

이재현 전 재정국장을 구속하고, 재정국 간부(공호식.봉종근)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선 건 그만큼 혐의도 많고 죄질도 나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검찰을 위축시킬 특검법의 국회 통과를 주도한 곳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수사 강도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강주안.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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