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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오르면 겁내는 미국인/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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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의 평범한 직장인이 내집을 마련하는데 30년 이상이 걸린다는 통계가 일전에 발표되었다. 부동산값이 엄청나게 높아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우리사회가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는 큰 원인의 하나가 바로 내집을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이 축재수단이 되고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의 세금체계가 잘못된데서도 비롯된다. 땅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세금이 적으니 땅값이 오를수록 공돈이 쏟아지는 것이다.
부동산이 문제가 안되는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엄청나게 많은 재산세를 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미국은 우리처럼 땅값이 시가·공시지가·과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시가에 맞추어 재산을 평가한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 메인주의 케네벙크포트별장이 재작년에 89만달러로 평가되던 것이 작년에는 1백46%나 오른 2백20만달러로 평가되어 재산이 오른 만큼 세금을 더 물게 되었다.
미국의 재산세율은 각 주와 카운티(군)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개는 2∼2.5%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만달러(1억5천만원)짜리 집을 갖고 있을 경우 약 4천달러(3백여만원)의 재산세를 물게 되어있다.
재산세 부담이 엄청나 미국인들은 재산평가가 높아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에게 별장시가를 평가한 군당국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겠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지금까지의 재산세는 너무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표가 공시지가의 15%선이라 하니 사실 미국에 비하면 거저 땅을 갖고 있는 셈이다.
최근 우리정부도 과표를 현실화하여 큰 집이나 많은 땅을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매긴다는 발표가 있었다. 뒤이어 이들 계층의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절차나 추진방식만 가다듬는다면 정부의 방향이 옳다고 본다.
부동산 값이 올라보아야 세금만 무거워진다는 자각이 형성된다면 턱없이 뛰는 부동산 값을 즐거워할 사람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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