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로 새롭게 우려낸 『아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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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젊은 시인 2명이 「아리랑」시집 2권을 각각 펴냈다. 최근 박세현씨는 『정선 아리랑』(문학과지성사), 박상률씨는 『진도 아리랑』(한길사)을 출간, 우리민족의 대표적 민요인 아리랑 가락과 정서에 자신의 유년 공간과 오늘의 무너진 삶을 싣고있어 시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
『조랑조랑 흘러가는 강물소리엔 귀를 막고요/앞산뒷산엔 빨랫줄을 매고 살지요/장정들은 밭에 나가 흙더미를 일구고/아낙들은 수수밭고랑에 엎드려 땅의 소리를 듣는 답니다/마음에 맺힌 건 호미 끝에 걸려 넘어지는 흙덩이 마냥/그냥 푸석푸석 깨뜨리며 살아가기요.』
박세현씨는 시『앞산 뒷산』에서 자신의 젊음을 보냈던 정선아라리의 고장 정선을 「앞산 뒷산엔 빨랫줄을 매고」살 정도의 산으로 푹 둘러싸인 좀은 공간으로 회상한다.
그런가하면 박상률씨는 시『보배섬(진도)』에서 『내친 김에 달리면/후딱 건너뜀직한/거리를 두고/넌/섬으로 앉아 있다./뭍에서 너를 두고/미소를 건네든/주먹을 들이대든/넌./뜨거운 흙으로/속살을 빚고/넘실거리는 물살 위에/아리랑을 띄운다』며 진도는 뭍에서 가깝지만 그곳과는 유리된 「섬」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산으로, 물로 둘러싸여 외부와는 닫힌 유년, 혹은 아리랑의 고향은 두 시인에게서 삶의 모태로서 공동체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현실적 공간으로 나타난다.
「마음에 맺힌」것들을 훌훌 털어버리든지, 아니면 뜨거운 흙으로 속살을 빚든지, 한까지도 가볍게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복원력이 훼손되지 않은 장소가 고향이며 아리랑 가락이다.
『이 땅에서 느낀 소외와 수모와 순간 순간의 절망감을/쓰러뜨릴 수 있는 땅이 혹 있다면/기차가 닿고 완행버스가 닿고 지친 저녁이 다다르는 마을/그 감격의 땅으로 가야한다/피로하고 지친 육신과 마른버짐 같은 꿈을 풀어놓으리라』
『떠나면 떠나 있는 그곳에/남으면/앉아 있는 그곳에/보배땅 숨소리/흙빛으로 보듬고/하늘 저 하늘/두루두루 이고 지고/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아리랑 가락에/지친 몸을 누일까/들뜬 맘을 앉힐까』 박세현씨의『정선 가는 길』, 박상률씨의 『그 땅 그 하늘』 두 시에 드러나듯 이래저래 고향을 떠난 두 시인의 시적 자아는 「마른버짐 같은 꿈」「들뜬 맘」등 출세욕에 지친 몸을 쉬고 원초적 삶을 회복하기 위해 고향으로 치닫는다.
『물살을 안고 돌던 물레방아/멈추어 선지 오래/의용군 나간 서방님 죽은 지도 오래/풀피리 불던 아이들/서울로 인천으로 제천으로/술집 멤버로 중국집 배달원으로/트럭 운전수로 3회전짜리 권투선수로 흘러가고』(박새현의 『물레방아』 중)
『마늘 심어라 파 심어라/하라면 하란대로/허리 꺾고 고개 숙여/손으로 부지런 떨었으나/손품 값도 안나오고 그냥/쟁기로 갈아 엎으게 생겼다/으째사 쓰까/으째사 쓰까/건뜻하면 구십년대 이천년대』(박상률의 『으째사 쓰까』중)
그러나 아리랑의 고향 정선·진도로 되돌려진 시적 자아들은 그 고향의 공동체가 무너져 내렸음과 그 고향을 피폐화시킨 근대화·산업화·농정의 실패를 들추어낸다.
이렇듯 두 시인은 아리랑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려는 전통 회귀정신과 원초적 삶을 파괴한 문명·제도·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을 동시에 드러낸다. 공동체적 삶의 정서와 한으로 응축되는 사회비판을 담고 있는 민요 아리랑을 이두 시인은 오늘에 살러 유년은 촌에서, 현재는 도시에서 보내 자칫 유년으로 도피하거나 뿌리 없이 흔들리기 쉬운 30대 대부분의 젊은 삶을 건강하게 극복해내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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