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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에 등돌리는 민심/전육(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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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 나라 어떤 선거든 예측이 빗나가는 예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역시 주요정당이나 매스컴의 예상이 투표결과와 어긋난 선거를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불가측성이 선거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사례를 멀리 거슬러 올라가 찾을 필요조차 없다. 정치규제에 묶인 양김씨가 막후에서 신당돌풍을 일으켜 이민우의 신민당으로 하여금 유치송의 민한당을 일거에 몰락케한 12대총선(85.2.12),꺼져가던 3김이 지방색이란 한가닥 밧줄을 붙잡고 기사회생한 여소야대의 13대총선결과(88.4.26)가 단적인 예에 속한다.
12대 총선 당시 5공하의 민정·민한당은 정치규제에서 갓 풀려난 구정치인들이 급조한 신당의 도전을 일과성의 뜬바람으로 가볍게 판단했고 매스컴의 보도태도도 대충 비슷한 기조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결과는 대도시를 휩쓴 신당이 제1야당이 되고 민한당은 주력부대가 신당에 흡수,통합되는 비운을 맞았다. 기존 정당과 언론은 5공의 서슬에 침묵을 지켰던 다수가 내심 규제에 묶인 양김세력이 진짜 야당이라고 믿고 있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유세장을 주도한 젊은 유권자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올라간 높은 투표율(84.6%)은 5·17후 신군부가 인위적으로 편대한 5공의 정당구조를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예상을 뒤엎은 12대총선 결과는 6·10항쟁,6·29로 이어지는 정치권 지각변동의 신호탄이었다.
13대 총선도 정부·여당과 언론이 오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양김은 대통령선거 패배와 정권교체 좌절에 대한 비난과 책임추궁속에 자기당 총재직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반면 민정당은 대통령선거 낙승여세에다 1구2인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꾼 이점을 유리하게 계산해 장미빛 설계에 젖어있었다. 일본처럼 거대여당에 군소야당이 난립하는 구도를 상정하면서 오히려 너무 많이 당선될 것을 걱정할 정도였다. 그때문에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중진을 탈락시키고 월계수회의 신인을 대거 등장시키는 공천쾌도를 휘두르기도 했다.
이같은 판단은 각종 여론조사가 뒷받침했다. 언론도 대부분 민정당이 과반수 이상을 쉽게 당선시킬 것으로 봤고 심지어 호남지역 37개 선거구중 민정당 우세지역을 17개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민정당에 과반수 미달이란 참담한 패배를 안겨주었고 호남에서 완승한 평민당이 제1야당이 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여당과 언론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더욱 골이 깊어진 지역감정이 야당의 분열상태까지 뛰어넘으리라고 보는데 등한했던 것이다.
이처럼 선거는 예측불허의 괴력을 발휘,왕왕 여당과 언론의 피상적 관찰과 전망을 비웃고 정치에 충격과 변화를 준다. 그러나 진짜 민심은 마냥 잠복해 있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관계자들이 여론을 이따금 편리한대로 해석했을 따름이다.
지금 진행중인 광역의회 선거에도 예측불허의 요인이 숨어있지 않은가가 최근 여기저기서 관심을 끌고있다.
우선 판세에 이상한 조짐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여야정당과 대권을 꿈꾸는 지도자들이 잔뜩 야심을 품고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그들이 노리는 붐이 좀체 일어나지 않는것 같다는 얘기다. 오히려 각종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당도 10%대를 넘지못하는 사상최악의 인기도를 반영하듯 유권자들의 반응이 냉담한 편이란 분석도 있다.
어느 야당지도자는 유권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대통령이 미국에 쌀개방을 하러 간다느니,여당이 내각제개헌을 할 것이라느니,정원식 총리서리사건은 공안통치의 결과라느니,야당이 뇌물받는 것은 조사하지 말라느니 별별 말을 하고 다닌다.
또 어느 여당 지도자는 내가 야당해봐서 잘 알지만 야당은 애시당초 집권능력이 없다는등 「어제」를 잊은듯한 발언과 무소속 사퇴압력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런 말에 감흥을 느끼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이 각광 받기에는 정치불신과 염증이 너무 깊은게 아닌가 싶다.
6공 3년간 여야 정당과 1노3김은 발가벗은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었다. 국정운영과 참여에서 보여준 무능과 무원칙,수서·공천뒷거래를 통한 부패는 그들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겼다. 정당은 정치권력이나 감투·특혜를 노리는 소수인의 집단으로 탈색된 느낌마저 주어 지역중심의 정당이나 정치인에 등을 돌리는 민심이 커가고 있다는 사람도 적지않다.
때문에 산업사회·대중사회를 효율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정치무대에 출현하기를 기대하는 탈정당의 분위기가 전례없이 충만해 있다. 투표를 통해 기존정당의 자기개혁을 밀어주겠다는 유권자와 민심을 잃은 정당에는 의석을 뺏어 자극을 주어야한다는 세력의 분포가 이번 선거의 이변여부를 판가름할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체 출마자의 33.6%를 차지하는 무소속의 존재는 확실한 변수가 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무소속중엔 정당공천탈락자가 다수이고 그들이 당선된후 원래 정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소속중엔 시민연대회의같은 순수 무소속도 상당수 있고 무소속이 대거 세를 형성하면 지방의회의 정치색 배제라는 풀뿌리민주주의의 원래 정신에 훨씬 접근하는 이점도 있다. 나아가 그런 결과는 기존정당에 일대 각성과 쇄신의 계기를 제공하는 호기일 수도 있다고 본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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