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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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의 암벽과 수평의 만년설이 교차하는 히말라야의 8천m 고봉. 공기가 희박해 생물이 살 수 없는 '신들의 고향'에서 산악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히말라야 8천m 고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엄홍길(43)씨와 박영석(40)씨가 히말라야 원정에서 겪었던 뒷얘기를 책에 담았다. 엄홍길씨의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박영석씨의 '끝없는 도전'은 한 인간의 성장과정, 히말라야에서 겪었던 위험과 동료들의 주검에 대해 잔잔하면서도 긴박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산을 모르는 독자들도 산악인들이 죽음을 담보로 하는 히말라야를 왜 찾아 떠나는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나마 읽게 되며 히말라야에 펼쳐진 산사람들의 진한 우정에 흠뻑 빠져 들게 된다.

엄홍길과 박영석의 책 모두 히말라야 8천m 고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의 자서전이면서 히말라야의 만년설, 그곳을 향한 인간들의 모습 등을 담은 것이 공통점이다.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은 책 제목처럼 엄씨가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디딘 1985년부터 15년간 무수한 좌절과 자신만이 느꼈던 절대 고독 속에서 14좌를 완등했던 각각의 산들에 대해 숨가빴던 순간들을 치밀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산악인이 아니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칼루 원정 때 프랑스의 유명 산악인에게 당한 수모(?)때문에 14좌 완등이라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는 뒷얘기도 읽을 수 있다.

1998년 봄 네번째 안나푸르나 등반에서 엄씨는 셰르파를 구하다 발목이 1백80도 돌아가는 중상을 입고 해발 7천7백m에서 3일간 죽음의 사투를 벌이며 베이스캠프로 내려온 적이 있다. 그 때를 엄씨는 "소진한 기운들이 길바닥에 버려질 때 삶에의 희망은 좀처럼 만져지지 않았고 죽음의 공포에 질려 울음조차 나오질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진솔하게 묻어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은 많은 욕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지만 산 앞에서 그 모든 욕심은 무용지물"이라며 "산을 내려와 산을 보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산을 오르면 그 곳엔 산이 없다"고 말한다.

한편 '끝없는 도전'은 박영석씨의 성장 과정과 대학 산악부 시절의 에피소드, 히말라야 원정의 뒷얘기, 14좌 완등 후 자신의 꿈 등을 편하게 풀어놓았다.

"고독이란 누구나가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라인홀트의 말처럼 두 권의 책을 통해 '신들의 영역'인 8천m에서 느끼는 인생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엿보게 된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으며 변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말과 함께….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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