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포드'가 원망스런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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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심층보고서 보기 성과급 차등지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불거지자 현대자동차(65,100원 100 -0.2%) 사측은 "이번에는 원칙대로 하겠다, 나쁜 관행을 끊겠다"고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지만 잔업 및 파업이 시작된지 21일만에 끝내 노조와 한발씩 양보하며 '합의'를 이끌어냈다.

현대차 경영진이 노조의 파업에 끝까지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장 폐쇄라도 해서 노조의 나쁜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현대차 사업장의 특성 때문이다. 자동차는 대표적인 일관생산체제를 갖고 있는 산업이다. 한 곳이 멈추면 나머지 모든 공정이 멈출 수 밖에 없다. '일관생산체제'를 만든 자동차의 아버지 '포드'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실제 14일간의 잔업 및 특근 거부, 부분파업에 따른 현대차의 생산피해는 2만1682대(3204억원)에 달한다. 현대차에 따르면 전면파업에 들어가면 하루에 7000대(910억원) 생산손실을 입는다. 막대한 피해다.

현대차와 종종 비교되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조선업은 한두달 작업을 중단해도 나중에 몰아치기로 일을 해 공기를 맞출 수 있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 사측은 원리원칙을 벗어나는 노조 요구에 대해서는 파업으로 압박하더라도 끝까지 수용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1988년에는 이듬해까지 128일 동안 파업을 견뎌낸 적도 있다. 이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원칙으로 자리잡아 노조측도 인식을 바꾸게 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경우 만약 생산라인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수출 중단에 따른 해외 딜러들의 이탈이 불가피하다. 수십년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구축한 해외영업망이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하나 중요한 이유는 현대차그룹이 구축 중인 수직계열화라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기아차를 정점으로 부품계열사(현대모비스, 위아 등)-소재계열사(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금융계열사(현대캐피탈, 현대카드) 등으로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연구개발(R&D) 및 생산 등의 부문에서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이는 회사의 가격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수직계열화는 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환경에서 제품개발기간을 단축시키는 등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등 시너지 효과가 있다"며 "제품개발기간 단축 및 비용절감 효과는 곧 가격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수직계열화는 양날의 칼이다. 정점이 무너지면 하부구조도 동반 부실해질 수 있다.

실제 현대차그룹의 매출은 대부분 현대기아차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잠정 매출실적은 56조로 그룹 전체 매출액의 60%를 차지했다. 올해 역시 전체 매출액의 60% 가량이 현대기아차에서 발생될 것으로 회사측은 예상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파업으로 생산차질을 빚으면 그룹 전체 매출도 급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수직계열화에 따라 계열사 상당부분의 매출이 현대기아차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즉 현대기아차가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되면 계열사의 매출도 크게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수직계열화는 완성차업체의 실적이 좋은 경우 이익을 그룹사 전체가 향유할 수 있게 있지만 반대의 경우 계열사 전체가 함께 손실을 볼 수 있다"며 "결국 대규모투자를 통한 수직계열화는 그 정점에 있는 완성차 업체의 실적에 따라 계열사 전체의 명운이 갈리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대차그룹 경영진 입장에서 장기간 파업을 끌고갈 수 없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당장 회사 매출이 급감하기 때문에 무작정 라인 중단을 끌고 갈수만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번 노사 합의는 기존의 무조건 퍼주기식 합의가 아니라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대차 노사 관계도 한단계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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