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폭력 대학존립 위기”/전국 총·학장회의 무슨말 오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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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중정부수립 주장 순수운동 한계 넘어/교수도 소신갖고 학생들 잘못 꾸짖어야/사회비리 뿌리뽑아 시위빌미 없애도록
5일오후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열린 전국대학 총·학장들의 긴급회의에서는 현재의 대학상황에 대해 대학관리자들이 느끼고 있는 위기감이 원색적이리만큼 구체적으로 표출됐다.
이날 회의는 정원식 총리서리 사건을 계기로 부랴부랴 마련된 것인데도 수도권소재 50개 대학,부산등 지방의 13개대학등 모두 63개대 총·학장들이 참석,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번 회동의 특징은 「원론적인 선언」차원을 넘어서 과격학생운동에 대해 총장등 교수사회가 방관자세를 버리고 「적극적 행동」에 나설 것을 결의하고 「구제적」대응책까지 논의했다는 점이다.
총·학장들은 종래 사회적 체면을 의식,언행에 신중을 기했으나 이번 사건의 충격을 반영하듯 이날만은 과격운동권에 대해 그동안 가슴에 응어리졌던 감정들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이런 탓으로 이 자리에서는 총·학장들의 여느 모임과 달리 정부의 민주화조치 미흡등 실정에 최근 시국의 근본원인이 있다는 언급은 거의 나오지 않고 운동권 규탄 및 교수 사회의 소극적 자세에대한 자책으로 일관했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회의후 발언요지가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각 총·학장들의 발언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총리서리 폭행사건은 외국어대 한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정총리가 어느 대학을 방문하든 비슷한 결과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각 대학이 적극적으로 공동대응,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대학교육의 위기를 극복해야한다.
▲최근 학생운동은 순수성·도덕성·합리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극렬폭력세력과 순수학생운동권은 차별화돼야 하며 대학·교수사회가 앞장서 올바른 학생운동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1일 부산에서 있었던 전대협발대식을 보면 학생운동이 아니라 도시게릴라식 혁명운동을 추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해방군단」같은 명칭도 쓰고있어 일본 적군파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다.
▲전대협의 일부 극렬학생들은 「민중정부 수립」까지 주장하고 있다. 전대협이 제도권밖의 단체와 연계돼 학생자치활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
▲교원회복을 위해 교수·대학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극렬학생들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학생들의 과오를 꾸짖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대학의 자율성과 권위확보를 위해 교수사회의 「소신」이 어느때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운동권 학생에게 영합하는 일부 교수들도 문제다.
▲지금은 대학교육위기의 최정점이자 대학존립의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성명서나 결의문 채택 정도로 지나쳐서는 안된다. 각 대학이 연대해 교수폭행·기물파괴·수업방해등에 대해 공동대응 해야한다.
▲당면한 교육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 대학의 총·학장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대학교육협의회 산하에 학원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와 같은 특별조직이 구성돼 교칙개정작업·교권수호·교육자율화 방안 등을 연구,정부에 건의하고 실행해야 한다.
▲학사관리의 무원칙이 학생들의 폭력성을 부추기고 있다. 총학생회간부들에게 장학금을 우선 배정하는 것이나 출석일수가 모자라는 데도 졸업시키는 것 등은 잘못된 대학사회의 관행이라고 본다. 또 학생이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때 엄격히 학사징계를 단행해야 한다.
▲교내의 무질서,폭력행위 대처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시위주동자들의 장기간 학내기숙문제나 캠퍼스내에서의 화염병보관,무분별한 대자보 부착 등을 학교측이 적극 제지·제거해 나가자.
▲지금까지는 학원내 공권력 투입을 자제해 왔지만 앞으로는 불법·파괴행위에 대해 단호히 공권력투입을 요청해야 한다. 법치가 서지 않는 민주주의는 큰일이다.
▲학생회비·학교지원금 등이 불법시위의 자금원이 되고 있다. 이들 경비에 대해 관리를 철저히 해나가고 학생회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자판기수입등 수익사업은 대폭 규제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퇴물이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우리학생들이 물들어 있으며 더 무서운 테러가 나올지 모른다. 운동권학생이 아니라 「좌익운동학생」인 것이다. 우리의 사상교육은 실패했으므로 사상교육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
▲대학당국은 극렬학생운동의 빌미가 될 수 있는 학내 비리나 부정부패 등을 척결해야 한다. 대학행정의 공개화 등도 병행돼야 한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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