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개입 여부에 초점|박창수씨 죽음 진상 규명 공방 한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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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 (31) 사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한달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달 6일 박씨의 투신 사망 후 『타살이거나 적어도 공권력에 의한 자살』이라는 재야노동권·유족들의 주장과 『부검 결과 타살로 볼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자살』이라는 검찰 측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안기부 개입설이 또 다시 나돌아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족들은 박씨 사망 다음날일 7일부터 25일째 안양병원 영안실에서 박씨 시신을 병원 냉동실에 안치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어 고조된 긴장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노협·업종회의 등 6개 재야 단체로 구성된 박씨 사건 관련 진상 조사단이 박씨 사망을 둘러싸고 제기하는 가장 큰 의문점은 투신을 전후한 시간에 안기부 직원이 있었다는 주장.
진상 조사단은 지난달 31일 기자 회견에서 『안기부 직원이 박씨가 투신하기 직전까지 안양 병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진상 조사단은 『박씨가 숨지기 하루 전 병원에서 안기부 부산 지역 노사 조정관 홍상태씨 (40대 초반)와 한진 노조 사무장 장세군씨 (33)가 비밀리에 접촉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10일 박씨의 부인 박기선씨 (30)는 박씨가 숨지기 전날 밤 자신에게 『노조 사무장 장씨와 함께 안기부 직원을 접촉했는데 안기부 측으로부터 전노협을 탈퇴하면 석방시켜주겠다는 종용을 받고있다』 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사단은 사무장 장씨는 지난달 10일 잠적했으며 조사 결과 장씨가 지난해 4월 부산에서 72평짜리 초대형아 파를 분양 받는 사실이 밝혀져 박씨 죽음에 안기부가 개입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진상 조사단 일각에서는 『한진 중공업 노조가 부산 노동 운동을 주도해왔기 때문에 박 위원장이 정보 기관의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박씨가 사무장 장씨를 통해 안기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심한 갈등 속에서 자살을 선택했을 여지도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기부는 『박씨를 상대로 한 공작은 없었으며 안양 병원에 안기부 직원이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진상 조사단 측은 각각 「자살」과 「타살」을 주장하며 사인공 방을 벌여왔지만 양측 모두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부검 결과 타살로 추정할만한 외상이 없는 상대에서 직접 사인이 「추락에 의한 장기 파열」로 나타났기 때문에 추락 자살에는 이론이 없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또 자살 동기에 대해서도 주변인 수사를 통해 「구치소 생활의 어려움과 노조 활동의 회의」 때문이라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왕성한 노동 운동을 벌여온 젊은 노동 운동가가 「노조 활동의 염증」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게 조사단의 주장이다.
그밖에 진상 조사단은 ▲병원 6층 옥상에서 떨어졌는데도 양 발목 외에 외상이 전혀 없었고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자살하는 사람이 링게르 병을 꽂고 있었던 점등의 의혹을 들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이 사망 하루만에 공동 부검한다는 유가족과의 합의를 깨가며 영안실 벽에 구멍까지 뚫어 강제 부검한 것은 타살을 은폐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하고 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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