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선교사 잡아먹은 것 후손들이 속죄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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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남태평양 피지의 식인종 후손들이 선조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당시 잡아먹힌 선교사의 자손들을 만나 속죄하는 시간을 가졌다.

피지의 비티 레부섬의 나바투실라의 원주민들은 13일 현지의 한 교회에서 1백36년 전 선조 식인종들의 '식사거리'가 됐던 영국 선교사들을 위한 추도예배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1867년 희생된 영국인 목사 토머스 베이커의 6대손을 비롯, 선교사의 후손 11명이 참석했다.

족장인 필리모니 나와와발레부는 이들 후손들에게 "추장의 머리를 만지면 안 된다는 원주민들의 금기를 어겨 먹이가 된 베이커 목사를 비롯해 여러 희생자들의 저주 때문에 마을에 흉흉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유족들에게 속죄해 저주를 풀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관광 수입의 덕을 톡톡히 보는 피지 내 다른 지역과 달리 나바투실라에는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없이 원주민들은 여전히 원시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식인 풍습은 2천년 동안 지속돼 왔다. 포로는 잡히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기 전까지 잔인한 학대를 당했다. 식인종 여인들로부터 성적 모욕을 당하고, 잘린 자신의 팔이 불에 구워지는 모습도 봐야했다. 일부 포로들은 마을 신전에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 포로의 해골은 물 바가지로 쓰였고, 뼈는 머리핀.목걸이, 돛을 꿰매는 바늘로 변신했다. 이들 유품은 오늘날 피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베이커 목사의 6대손인 데니스 러셀은 족장의 손을 잡고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유족들은 원주민들의 수제 깔개와 소, 피지 최고의 특산품인 향유고래 이빨 1백개 등을 선물로 받고, 선조들이 마지막으로 머문 장소들을 둘러봤다. AFP통신은 이날 행사를 "1백36년 만의 화해"라고 보도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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