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은 우리 손바닥 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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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테러리스트들은 우리가 어디서 먹고 자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 주둔 중인 영국군 병사의 말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라크 무장단체들이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위성사진을 테러 공격에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분석이 나오면서 영국 병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그런 증거는 지난주 무장단체의 근거지로 알려진 한 가택을 수색하면서 나왔다. 영국군 기지를 찍은 위성사진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진의 출처는 구글 어스(earth.google.com). 이 사이트에 들어가 지명만 치면 원하는 지역의 위성사진을 받아 인쇄까지 할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사진들 뒷면에는 '샤트 알아랍 호텔'이라고 쓰여 있었다. 1000명이 넘는 스태포스셔 연대의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사진에는 정확한 위도와 경도는 물론 막사, 화장실, 주차된 장갑차량까지 영국군 기지 내 시설이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로열 그린재킷 부대의 한 정보 장교는 "이라크 내 무장세력들이 인터넷 위성사진을 이용해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위성사진만 있으면 막사 등 기지 내 어떤 곳도 정확히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라크 남부의 영국군은 거의 매일 저항세력의 박격포와 로켓 공격을 받고 있다. 12일에도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는 바스라 궁이 세 차례나 폭격당했다. 문제는 먼거리에서 날아오는 포탄의 정확도가 점점 더 정밀해진다는 것이다. 7㎞ 정도의 거리에서 날아오는 포탄에는 영국군도 속수무책이다. 정보력을 동원해 적의 공격지점을 먼저 기습하기도 하지만 무장단체들의 공격은 줄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란으로부터 훈련받고 무기를 지급받은 저항단체의 정교한 공격이 늘고 있다"고 이라크 주둔 영국군 대변인은 밝혔다.

일부 영국군 병사는 "자신들이 부상당할 경우 인터넷 사이트 구글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글 대변인은 "위성사진 정보가 '선과 악' 모두에 사용될 수 있다"고 시인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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