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이승엽의 '천추의 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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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千秋)의 한(恨)'. 천년의 가을이 지나도 풀릴까 말까 할 한입니다. 백년도 못사는 사람에겐 평생토록 풀 수 없는 짐입니다. 더더욱 갚을 수도 없는 마음의 채무입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승엽이 그 끝도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는 짐을 떠 안았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입니다. 뇌종양이란 병마에 쓰러진 지 꼭 5년만에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막둥이가 12년 전 프로에 데뷔했을 때 도시락을 싸 갖고 다른 선수들의 부모들과 함께 응원하러 다니는 게 큰 즐거움이자 보람이었던 어머니 김미자씨. 그랬던 김씨는 정작 아들이 '타격 천재'에서 어느덧 '아름다운 청년'과 '국민타자 '로 성장하고 다시 일본과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는 세계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서는 모습을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2003년 6월의 세계 야구 사상 최연소 300홈런 이어 10월의 일본 오 사다하루를 넘어선 아시아 한 시즌 최다 56홈런 그리고 2006년 3월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홈런왕 8월의 한.일 통산 400홈런.

그럴 때마다 막둥이는 "엄마 오늘 나 홈런 쳤는데 봤나?"라며 부러 어리광을 피웠지만 김씨는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병마가 아들의 기억을 모두 앗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이미 아들은 느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무색의 풍경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승엽에게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희생'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시는 분이었다. 자식들을 부족한 것 없이 키우기 위해 너무나 검소하게 사셨다. 집 앞에 마트가 있어도 5~6㎞나 떨어진 거리를 버스도 타지않고 장을 보러 다니셨다. 당신 생각은 안하고 고생하셔서 그런 병이 생기고 커진 것이다. 어머니께서 의식이 있었을 때 제대로 선물 한번 해보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일간스포츠 1월8일자)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도 보여줄 수 없는 어머니와 몌별은 이승엽 에게 뼛속 깊이 사무치는 한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상실감이 그의 방망이를 굳게 잡은 손아귀에서 야금야금 힘을 흐트러 놓을 수도 있습니다. 더더욱 슬럼프란 괴물이 긴 혓바닥을 내밀어 그의 몸을 휘감 기라도 한다면….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치료해준 것에 보답하기 위해 병원의 특강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수술 후 회복 중인 성치않은 무릎인데도(그래서 절을 하지못하는 것을 양해해달라는 글을 붙여놓고도) 통증을 참고 일일이 큰 절로 문상객을 맞이한 그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는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승엽은 이런 걱정들을 기우로 만들어버릴 것 같습니다. "발인이 끝나고 몸이 힘들지 않다면 저녁부터라도 운동을 시작하겠다. 어머니도 내가 운동을 게을리하는 것을 원치않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올시즌이 끝나고 꿈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우리 아들이 사나이 중의 사나이가 되었구나'라는 말을 듣도록 하겠다." (7일 밤 기자들과 빈소 인터뷰에서)

늦가을이 오면 지금보다 더 큰 야구 스타 중의 야구 스타가 되어 어머니의 묘소 앞에 설 이승엽의 모습을 확신하면서 고인께 '아드님 걱정 마시고 편히 쉬시라'고 명복을 빕니다.

USA 중앙일보 구자겸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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