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편 금성에서 온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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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수리는 이렇게 하는 거야” “여보, 우리 쇼핑 갈까요?”

뉴스위크최근 남편과 함께 새집에 들여놓을 수납장을 고르려고 주방 용품점에 들렀다. 판매원이 여러 가지 나무 세공과 모서리 형태, 장식, 철제 부속품 등의 샘플을 보여주며 어떤 제품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그동안 남편은 우리에 갇힌 채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물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나는 남편의 그런 표정에 익숙하다. 남편이 나를 붙들어 앉혀놓고 자신이 수리 중인 가전제품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 내가 짓는 표정과 똑같다.

주방 용품점에서 남편을 보며 그가 왜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기계 수리 이야기로 나를 괴롭히는지 갑자기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남편이 그럴 때 반격할 근거가 생겼다.

나는 작가다. 따라서 컴퓨터를 생활에 필요한 도구로 본다. 전화·전자오븐·식기 세척기나 다를 바 없다. 그 제품들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라지만 작동 원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남편은 PC의 내부 작동에 매력을 느낀다.

남편은 수백 개 업체가 참가하는 대규모 컴퓨터 전시회에 가는 일이 가장 재미있고 즐겁게 오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이런 취미를 자기 자신만 즐긴다면 문제되지 않는다. 물론 내 컴퓨터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남편이 고쳐주면 더 이상 고마울 수 없다.

그러나 그 뒤에 으레 따르는 상세한 설명은 괴롭기 짝이 없다. “당신 또 울상을 짓는군.” 남편은 컴퓨터를 다시 작동하도록 만들려고 자신이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 시시콜콜 설명하면서 아주 짜증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고쳤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아니, 사실이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나도 관심사는 꽤 많지만 남편이 내 컴퓨터를 어떻게 고쳤는지는 관심 밖이다. 사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 중에 그런 걸 알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고 소리치지 않는 게 다행이다.

그래서 주방 가구를 고르러 나가면서 남편에게 앙갚음을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내가 관심 있고 남편이 따분해하는 일에 대해 길고 상세한 대화를 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판매원을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가구 고르기가 생각했던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과 모델 하우스에서 봤던 바로 그 수납장을 들여놓자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건축업자가 주방 수납장 납품업체를 바꾸었다. 다시 말해 모델 하우스의 수납장을 제작했던 업체를 쓰지 않기로 했다.

“똑같은 수납장을 주문하면 안 되나요?” 우리는 순진하게 물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델 하우스는 2년 전에 건축이 됐고 문제의 수납장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결할 방법이 있을 듯했다. 우리는 모델 하우스의 수납장과 똑같은 모양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판매원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재미있는 일이 시작됐다.

판매원들이 여기저기서 나무 세공과 모서리 형태, 장식, 철제 부속품 등의 샘플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쩐지 낯익은 그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남편이 SD램 설치에 관해 설명했을 때 부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도 그 비슷한 표정을 본 듯하다.

마침내 수납장 결정을 끝내고 주방 용품점을 나왔다. 저녁식사 예약 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마치 방금 무기징역에서 감형을 받은 사람처럼 홀가분한 듯했다. 내친김에 조금 더 밀고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상가에 가서 커튼도 볼까요?” 남편이 그 끔직한 세 시간 동안 주방 용품점에서 뭔가를 깨닫고 내 제의를 거절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남편은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그래놓고는 정작 갖가지 무늬의 커튼 감을 보여주며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묻자 남편의 눈빛이 흐릿해지며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는 수납장 문제를 해결한 일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창문 커튼 고르는 일은 당연히 다른 날로 미뤘어야 했다.

결국 그날 창문 커튼을 고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된 측면도 있었다. 그 일은 남편이 컴퓨터 전시회나 내가 가고 싶지 않은 다른 장소에 함께 가자고 제의할 때 거절할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이제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편이 함께 하자고 조를 때면 이렇게 말한다. “여보, 커튼 사러 갈까요?”

(필자는 뉴욕주 포트 워싱턴에 산다.)

MARY SCHAEFFER

<뉴스위크 7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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