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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A아인슈타인저『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15년 전에 아인슈타인의『나의 세계관』(Mein Weltbild,1953, 신일철 옮김)을 읽고 그때까지 위대한 과학자로만 알았던 아인슈타인에 대해 필자는 인식을 새롭게 했다. 특히 그는 과학뿐만 아니라 도덕·정치·종교·경제·예술 등 다방면에 걸쳐 올바른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자기의 전 생애를 바쳐 연구해온 과학보다 인류를 더 사랑했다. 따라서 필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가 올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난 1월 아인슈타인의『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Comment Je Vois Le Monde, 1979, 박상훈 옮김)를 읽고 또다시 많은 감화를 받았다. 이 책은『나의 세계관』의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면서 그밖에 아인슈타인의 다른 연설·강연·편지도 수록하고 있다.
내가 또다시 감화를 받은 이유는 그동안 나도 변했지만, 세계가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인슈타인이 약 반세기전에 도덕의 타락, 과학자의 몰가치적 연구, 무분별한 자연개발, 창의성 없는 교육, 군비증강, 핵전쟁,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문제 등에 대해비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예언이 현재 그대로 적중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인류의 운명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본질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힘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실질적으로 공감과 사회적 참여에 근거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면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그는 과학자의 몰가치적 탐구는 그 결실이 도덕적으로 눈먼 정치 권력자의 손에 회수되어 많은 대중을 억압·조종하는데 이용되고 있다고 과학자들에게 경고한다. 더욱이 국가가 개인의 종(종)이지, 개인이 국가의 종이 아니라면서『의무적인 군복무제를 거부하라』고 호소한다. 또『전세계의 평화는 완전한 무장해제-단계적이 아닌 단번에 일시적으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하나의 세계정부수립을 제창하고 핵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에 앞장선다. 간디를 존경했던 그는 전쟁과 폭력을 철저하게 증오했다.
이번 수서 비리, 페놀오염,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전경의학생치사사건 등을 볼 때 아인슈타인의 생명에 대한 외경, 자연에 대한 경건은 필자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사실 위의 사건들은 직·간접적 살인행위다. 심지어 원진레이온은 은행 관리 업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부 투자 기관인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경제성장 일변도나 정치자금을 위해 오히려 다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시키는 일을 눈감아 주거나 조장한다면 그것은 이미 오만불손한 도당이지 정부가 아니다.
그리고『학교에 강좌는 많지만 지혜롭고 관대한 교수는 없다. 그러면 인간은 인격체가 아니라 유용한 기계가 되고 만다』는 그의 말은 우리 현실을 미리 알고 말한 것 같다.
또 그의 주장대로 팔레스타인 당에 권력적 정부를 세우지 않고 도덕적 정부를 세워 이스라엘 민족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더라면 2차대전후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거기에서 처참하고 야만적인 전쟁이 되풀이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걸프전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문명 비판적인 입장에서 인류의 운명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경고를 보냈던 아인슈타인의 글을 읽노라면 우리는 개인적인 이득이나 국가·민족의 이익을 떠나 전인류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류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라는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자신의 존재이유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야 하며, 그럴 때 빗나간 삶의 가능성은 극소화된다. 자기 삶의 성공여부가 다른 사람의 미소와 행복에 달려 있다』는 그의 주장에 접할 때 더욱 그렇다.
또 그가 나치의 독재에 굴하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주의 신봉자인 점은 다 잘 알지만, 1933년에『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나는 다만 정치적 자유와 관용, 법률 앞에서 만민의 평등이 지배하는 나라에 가서 살 것이다』라는 그의 선언 속에「관용」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냉철한 과학자이기 이전에 따뜻한 한인간으로서 우리 앞에 와 닿는다.
아무튼 이 책은 인생의 문제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생각할 청소년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주고, 어른들에게는 일상의 타성에서 벗어나 세상과 인생을 다시 새롭게 보게 한다. 물론 징병제 거부, 즉각적 무장해제, 세계정부 수립 등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에 치우친 의견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앞으로 세계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하리라는 데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기자신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전체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지고 있다. 개체의 유지와 공동체의 존속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진실로 인격자로서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한다. 징병제, 인류를 죽이는 데만 쓰이는 무기제조,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자의 명령 등은 우리 모두가 거부해야 한다. 이제 과학자들도「철학(가치판단)이 있는 과학연구」를 해야 한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어려운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금세기최고의 물리학자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도주의적이며 평범하고 소탈하며, 인간의 고통에 괴로워하고, 인간의 행복증진을 위해 일생을 바친 한 인간으로서의 아인슈타인도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안현수<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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