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위/조직정비 새길 찾는다/강군 장례식이후 향방에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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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시적 성과없어 입지에 부담/민생문제 성토 국민호응 신경
강경대군 치사사건이후 재야의 구심점으로 시국을 주도해온 「폭력살인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가 강군 장례식이후 어떻게 변신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범국민대책회의는 강군사망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급조됐으나 각종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이끌어와 학생·재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다.
국민연합·전민련·전노협·전대협·전농·전빈협·민변·공추련 등 각 분야 55개단체가 망라된 대책회의는 6공출범 이후 최대의 재야통합조직체.
대책회의는 89년 공안정국이래 침체와 분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재야가 처음으로 연대해 한목소리를 냄으로써 강군 장례식이후에도 상설기구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어왔다.
대책회의의 공식입장은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고 있으나 모처럼 이끌어낸 재야운동권의 결집기반을 어떤 형태로든 유지해 나간다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결코 만만치 않은게 사실이다.
우선 계속된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공식사과나 공안정국의 철회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한채 오히려 핵심간부들에 대한 대량수배라는 역공을 받고 있는 점이 현실적인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직까지 확고한 조직체계를 갖추지 못한채 한시적 성격을 갖는 대책회의로서는 대량구속사태를 딛고 조직개편을 하기에는 정국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5·4,5·9국민대회때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의 인원을 동원,강도높은 대정부 투쟁을 전개했지만 11,12일 집회에서 참가인원이 격감한 것도 지도부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강군 장례후 근거지인 연세대를 떠날 수 밖에 없으나 지도부를 포함한 1백명이상의 구성원이 신변위협을 받지않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책본부측은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결집된 재야의 역량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14일 강군 장례집회에서 수십만명의 인원을 동원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과도적인 상태에서 5·18 전국시위에서 1백만 군중을 불러내고 이 과정에서 한단계 높은 수준의 단일조직결정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대책회의 일각에서는 명동성당이 87년 6월항쟁의 상징성과 함께 도심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 투쟁의 장기화를 위해 최적의 장소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실제로 농성지도부를 이루고 있는 전대협 간부들은 명동성당 이외의대안은 없을 것으로 보고 이에 따른 사전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대협은 대규모 시민참여만이 투쟁의 장기화와 6월항쟁 수준의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대국민 홍보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정치투쟁 위주 강경노선이 시민참여의 동기를 제한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시민들의 정서와 수준에 맞는 집값·물가폭등 등 민생파탄 부분을 집중적으로 선전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대책회의는 최소한 87년 6월항쟁을 주도했던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수준이상의 조직건설을 원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가능성은 14,18일 시위에서 드러나게될 국민들의 호응정도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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