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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서 물러서야할 이 한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스산한 한 주가 또 시작됐다. 치사정국에 보안법 변칙처리가 뒤엉켜 조성된 여야 대치상태는 쉽사리 어느 한쪽의 양보로 수습될 것 같지 않다.
반면 재야운동권이 주도하는 장외투쟁은 야당의 동조,민심의 묘한 흐름에 편승해 종전까지의 침체추세를 벗어나려 안감힘을 쓰고 있다. 때마침 외신은 한국에 무슨 변고의 조짐이라도 보이는듯 사태를 심상찮게 분석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후 몇번의 공화국을 거치면서 유사한 위기를 수없이 겪어 왔다. 냉정히 회고하면 단 한해도 태평성대를 구가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라는 발전해 왔다. 우리는 위기의 벼랑에 바짝 다가서면서도 끝내 단애에 굴러 떨어지지 않고 극복한 경험과 지혜를 또 한번 스스로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위국도 진통은 따르겠지만 극복되지 못할 성격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해결의 주체들이 얼마나 현 상황의 중대성에 대해 바른 현실인식을 하고 위국극복에 따른 국력의 낭비와 국민의 불만을 줄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새삼 사태발생의 책임과 인과관계를 논할 생각은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피차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인식과 노력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운동권의 과격성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는 다수 국민의 불만과 불안에 체중을 실어 응답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6공정부의 각종 정책에 실망하고 있으며 서민들 간에는 절망의 기미도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지방색을 개선하지 못한 현 정부의 인사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이들이 소극적 비협조의 방관자세를 넘어 앞으로 각종 선거를 통해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야 하루 아침에 문제해결이 어렵겠지만 국민을 기분 나쁘게 하는 몇가지 요인은 대통령의 맘먹기에 따라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본다. 이를테면 「TK특혜」로 비롯된 인사불만이나 내각제개헌 집착에서 오는 민자당 내분의 요인 등은 대통령의 의지만 굳히면 당장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노재봉내각 경질이나 보안법 개정에 따른 정치적 은전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요하는 것들이라 양자택일의 권고를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다만 6공의 슬로건이 민주화이고 3당통합의 명분이 개혁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재삼 상기시키고자 한다.
물론 오늘의 위기엔 야당이라고 책임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치사정국·개혁입법처리에 관한 신민당의 자세엔 원칙존종보다 기회주의적인 행태가 더러 눈에 띈다.
정권투쟁 참여 여부에 대해 일관성 없이 왔다 갔다 말을 바꾸고 있다. 집권대체세력으로서의 가능성과 철학보다는 여당의 실책·무능에서 오는 반대급부를 선호하는 인상이 너무 역력하다. 소수가 다수에게 대항하는 수단으로 늘 배수진이나 치고 최후통첩을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는지 재고해 주기 바란다.
이제 그렇게 할만한 때가 되었다. 여나 야 모두 정상적인 책임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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