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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졸라매는 미국인/중고품·할인점 “성시”(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경기 안풀리자 “구매 공포증”
『허리띠를 졸라매야 산다.』
요즘 보통 미국인 사이에서 팽배하는 경제관이다.
걸프전 승리로 세계의 패권국임을 재확인하고 아직까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미국에서 이같은 생활고를 얘기한다는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인의 검약주의는 최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오디오판매점에서 인기를 끄는 품목은 호화고급품이 아닌 중저가 컴포넌트다.
고급 패션상품점의 대명사­루이비통은 파리를 날리고 있다.
보통 미국인들은 「근검」「절약」「간소화」라는 단어를 새삼 깊게 새기면서 새차보다는 중고차를 사고 고가전문점을 찾기보다는 할인점포를,으리으리한 저택보다 중급정도의 주택을 선호하며 외식대신 되도록이면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 한다. 지난해 미국의 소매물량증가율은 겨우 3.8%에 그쳐 82년이래 최저의 수치를 보였다. 자동차대리점 1천2백여개소가 도산했으며 주택판매율은 무려 17.4%나 내려갔다.
미국 경제전문가들은 이를 「구매에 대한 새로운 공포현상」으로까지 부르고 있다.
빚더미에 눌려지 내기 시작한 80년대이전 수십년간 미국인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소비자로 손꼽혔다.
일본제 자동차·카메라·VTR 등을 마구 사들이는 미국인들의 탐욕스런 구매성향에 힘입어 일본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구매공포증,즉 절약추세확산 요인으로 미 경제전문가들은 지속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소비침체 심리를 첫손꼽고 있다.
할부금등 빚이 거의 없는 소비자들까지도 스스로 빈곤감을 느낌으로써 고가품의 구매의사가 위축되고 지갑을 움켜쥔 손을 벌벌 떨고 있다는 것.
빈곤감을 느끼게 되는 가장 비근한 예가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다.
투기적인 붐이 일었던 80년대에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동산가격은 명목가치를 과신한 부동산소유자의 심리적 부유감을 부추겨 과잉소비로 이어졌지만 뒤이은 부동산가의 하락으로 정반대현상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인구 통계학자들은 2차대전후에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들이 사회구성 주세력이 되고 고령화가 미국인들의 절약추세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세대는 지난 80년대에 주택·승용차 등 대부분의 고가품목을 이미 구입,이제는 고가품에 돈을 더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대신 이들은 앞으로 자녀들의 대학학자금과 자신들의 은퇴후를 위한 자금마련을 염두에 두고 저축에 열을 올리고 있고 베이비붐세대가 아닌 가정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 미국인들은 새삼 「저축의 귀중함」을 깨닫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87년 2.5%까지 하락했던 미국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이 지난해 4.5%로 올라섰고 앞으로도 상승할 것이라는 미 상무부의 통계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근검절약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당분간 허리띠를 계속 졸라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미 경제의 실정이다.<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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