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의영화만담] '언니가 간다'의 시간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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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초고속 인터넷이 시간여행까지 허락한다는 '언니가 간다'의 논리적 허점을 따져 묻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일례로 영화에서처럼 과거에서 만난 어릴 적 자신을 얼싸안는 행동 따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합니다. 양자 전자기역학에 나오는 '반입자' 개념을 적용할 때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던 한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순간 신체 각 입자가 소멸해 버리는 걸 막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군요.

하지만 제법 치밀하게 아귀를 맞추었다고 자부하는 영화들도 물리학자들이 풀스윙으로 휘두르는 회초리를 피하진 못합니다. '아인슈타인 우주로의 시간 여행'(한승)과 '블랙홀, 웜홀, 타임머신'(사이언스 북스) 같은 책을 보면 '사랑의 블랙홀''엑설런트 어드벤처''백투더퓨처''터미네이터''콘택트' 같은 '시간여행 영화'의 과학적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습니다.

이들 '친절한 과학자씨'에 따르면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보다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이 몇 곱절 더 어렵다는 게 현대 물리학의 결론이랍니다. 설사 힘들게 과거로 간다 해도 정작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는군요. 그 유명한 '할머니의 역설' 때문입니다. 과거로 간 당신이 할머니가 어머니를 낳기 전에 할머니를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어머니도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당신도 태어나지 못할 것이며, 당신이 태어나지 못했으니 과거로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할머니를 살해할 수도 없겠죠.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역설을 해결할 비책이 그 위대한 아인슈타인에게도, 그 잘난 스티븐 호킹에게도, 농담도 잘하신다는 파인만씨에게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시간여행 영화'는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뒤바꾸려 애쓰지요. 물론 제작자들은 그런 영화를 훨씬 좋아합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영화는 돈이 많이 드니까요. 관객들도 오지 않은 미래를 만나는 재미보다 익숙한 과거를 낯설게 변형하는 쾌감이 더 큰 모양입니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인간의 상상력이 늘 허무했던 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10년 전 H G 웰스가 소설 '타임머신'에서 이미 4차원의 개념을 제시했죠. 1865년,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세상에 발표하기 반세기 전에 출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일찌감치 웜홀과 평행 우주를 예견했습니다. 토끼굴이 상징하는 '웜홀'과 이상한 나라가 은유하는 '평행 우주'는 현대 물리학에서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할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지목되는 핵심 개념입니다.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저자는 사실 당대의 저명한 수학자 찰스 도지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금 영화 감독들이 상상해낸 말도 안 되는 시간여행 방법도 언젠가는 실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까지는 '수면의 과학'에서 스테판이 개발한 '1초 타임머신'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 같네요. 만일 1초를 되돌릴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뭘 해 볼 수나 있을까요. 전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바꾸겠습니다. 좀 더 근사한 걸로.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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