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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포스트 코뮤니즘의 유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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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치적 불안정과 선거로 뽑힌 지도자들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중.동유럽 전체의 특징적 현상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최근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동부 유럽인 중 민주주의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약 3분의 1에 불과했다. 또 서유럽인들과 달리 선거가 공정하고 자유롭게 진행된다고 보고 있지도 않았다. "당신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중.동유럽인의 22%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민주주의를 대체할 제도가 없는데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 같은 감정의 양립과 불만 속에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포퓰리스트(대중적 인기영합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민중의 진정한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선거와 국민투표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포퓰리스트가 곧 반(反)민주적인 것은 아니지만 반자유주의적인 것은 틀림없다. 그들은 헌법과 대의적 민주주의가 대중의 정당한 불평이나 가치관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낙태나 동성애.사형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주의가 보장하고 있는 '관용적 자유'보다 가톨릭에 기반을 둔 '도적적 질서'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가정은 폴란드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치관의 정치'의 토대가 되고 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반자유주의적 소수민족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혐오주의를 합법화하는 조치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의 중요한 특징이다. 슬로바키아 국민당의 지도자인 얀 슬로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인들이 독일인들을 추방한 것을 부러워하면서 헝가리계 소수민족이 다수민족을 억압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공산주의 정치문화의 유산인 정치적 양극화를 가장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곳도 중.동유럽이다. 정치적 경쟁자는 토론하고 협상하는 상대가 아니라 파괴해야 할 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15년간 시장경제를 시행해 온 바르샤바와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의 포퓰리스트들은 국가를 복권시키고 싶어한다. 사회주의 정당들조차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시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의는 민족주의적이고 보호주의적인 극우파 정당들이 주도해 왔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1990년 이후 이 지역을 주도해 온 친시장적.친서방적 엘리트들에 대한 포퓰리스트들의 도전은 반부패와 탈공산주의라는 두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폴란드에서 이 두 가지의 결합은 공산주의로부터의 비폭력적 이탈을 가능케 했던 온건 반체제 엘리트와 온건 공산주의 엘리트들의 타협이라는 '원죄'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다. '89년의 대타협' 때문에 옛 공산주의자들이 정치적 파워를 경제적 파워로 전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부패와 탈공산주의라는 두 가지 전선에서의 동시 투쟁을 주장하고 있는 헝가리 제1 야당인 피데스(Fidesz)나 체코 집권당인 시민민주당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민족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민족적 정체성과 외부적 위협에 맞서 주권을 지키는 유일한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들의 비전은 물질적이고, 타락하고, 관용적이고, 초국가적인 모델에 맞선 '주권적 국민국가'들의 모임인 '기독교적 유럽'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집을 청소한다'는 약속으로 집권하지만 일단 집권하면 그 집과 자신을 일체시함으로써 정치적 후견주의에 빠지고 만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중.동부 유럽에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자크 뤼프닉 파리 국제연구센터(CERI)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