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꽃」그만꺽자/5년전 분신자살 김세진·이재호군 어머니의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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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살아서 부정·불의와 싸워나가야/부모에게 평생의 한 남기지 말고/좀더 크게 좀더 멀리 생각해서/감정 아닌 이성의 판단 따르기를
『죽어서는 안돼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서,건강하게 자라서,저희들이 하고싶던 일을 하고,보고싶던 세상을 보아야지 왜 죽습니까. 더이상 죽어서는 안돼요.』
성남 경원대생 천세용군이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세번째 분신자살을 결행한 3일 오후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판교공원 묘지에서는 5년전 분신으로 아들을 잃은 두 어머니가 만나 목멘 호소를 했다.
5공 강압통치가 절정을 이루던 86년 서울 신림동 네거리에서 『전방입소 반대』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함께 분신 자살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던 서울대생 김세진(당시 21세·미생물학과4년)·이재호(당시 21세·정치학과4년)군의 어머니.
김군의 5주기 추도식에서 올해도 다시 만난 김군의 어머니 김순정씨(55)와 이군의 어머니 전계순씨(54)는 가슴에 묻은 아들들을 생각하며 지금도 이어지는 젊은 자식들의 희생에 가슴아파했다.
『얼마나 분하고 밉고 답답했으면 제몸에 불을 지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부모·가족들에게 평생의 한을 남길 뿐입니다. 좀더 크게,좀더 멀리 생각하고 감정보다 이성의 판단에 따르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백주 대낮에,그것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경찰이 학생을 쇠파이프로 때려죽일 수 있습니까. 더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대책이 제시돼야지요.』
지금도 「우리 세진이」「우리 재호」가 『어머니』하고 부르며 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는 두 어머니는 5공과 별다를 것이 없는 6공 정부가 또다시 젊은이들을 죽이고 있다면서도 분신만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큰애가 죽고 난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고통이었어요. 아직도 알맹이는 빠져나가고 껍데기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 같아요. 죽은녀석이야 이 어미의 마음을 알리가 없겠지만….』『그래서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것 아닙니까. 몹쓸 녀석들….』
아들을 잃은 뒤 「민주화 유가족협의회」에 가입했고 같은 처지에 친혈육처럼 지내오는 두 어머니는 비명에 간 아들들을 얘기하다 끝내 서로의 손을 잡고 오열을 터뜨렸다.
오후 2시,동대문 감리교회 장기천 목사의 설교와 기도가 시작됐다.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들을 차가운 땅속과 서너평의 감옥으로 내몬 것은 잘못된 권력과 우리 기성세대가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학생들은 부디 생명을 자기마음대로 버리거나 취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서도 우리 기성세대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이미 사회인이 된 이·김군의 친구와 「유가협」회원 등 1백50여명의 참석자들은 모두들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분신소식을 들을 때마다 5년전의 그 찢어질듯한 고통이 생각납니다. 부모님들은 지금 얼마나 괴로우실지….』
두 어머니는 지난달 26일 아들들이 다니던 서울대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 싸우라」는 당부를 했다고 했다.
아들의 분신이 마지막이기를 바랐다는 두 어머니­. 추도식을 마치고 아들의 무덤을 다시한번 돌아보며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더디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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