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에 밀려 주판이 사라져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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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전사계산기와 컴퓨터산업에 밀려 주판이 사취를 감춰 가고 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상인들은 물론 각 가정에서 필수품이던 주판이 이제는 구경조차 힘들게 됐다. 이에 따라 옛날에는 이해타산이 빠른 사람을 가리켜「주판알 튀긴다」고 하던 말이 이제는「계산기 두드린다」는 표현으로 바뀔 정도가 되었다.
주판이 이처럼 빛을 잃기 시작한 깃은 80년 초부터 휴대용 전가 계산기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부터.
지난해 휴대용 계산기 판매는 2백20만대(매출액 62억8천 만원)인대 비해 주판은 28만여 개에 불과했다. 80년대 초만 해도 연간 40만개 생산되던 것이 85년 35만개로 줄더니 다시 축소돼「10년 새 30%의 급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수관산업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나마 있던 3∼4개 공장 중 89년 고려주판(주)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안방 기업이 되다시피 한 몇 개 지방 군소 업체들을 제외하면 한국산기가 최후의 생산업체로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판이 퇴조를 보인 데는 정부의 컴퓨터 교육 강화도 한몫을 했다. 문교부가 83년부터 컴퓨터산업 육성정책에 따라 상업학교에도 정보처리과 등을 설치하면서 주산수업의 축소·폐지가 잇따랐다.
70년대의 경우「전 국민 주산3급 이상 갖기 운동」이 벌어지고, 80년대 중반에도 두뇌개발에 좋다 해서 주산이 빛을 본적이 있긴 했다.
그리나 그것도 잠시뿐, 지금도 매년 주산 왕·암산 왕 선발대회가 열리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에 따라 주산학원으로 등록된 선 국 7천여 개 학원도 주산교육 만으론 경영이 어려워 간판은 그대로 둔 채 속셈이나 일반과목까지 가르치는 실정이다.
그러나 빠른 산업화·정보화시대의 물결 속에 주산이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는지 의문이 크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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