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교수 "내가 미쳤나 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자의 시를 도용, 발표해 물의를 빚고 있는 마광수(56.사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또 다른 사람의 작품을 시집 '야하디 얄라숑'(해냄)에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 교수는 5일 오후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1983년 홍익대 조교수 시절 제자였던 김이원(43.여)씨의 작품을 단어 한 개 정도만 고치고 발표한 사실과, e-메일을 통해 시 창작 지도를 하던 40대 주부의 작품을 마지막 두 연만 고치고 발표한 사실 모두를 인정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아무래도 내가 미쳤나 보다. 병원에서 최근에 조울증 판정을 받았다. 판단력이 흐려졌나 보다."

-제자 김이원씨 작품은 표절이 아니라 도용이다.

"도용이라고 말하면, 그래 인정하겠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23년 전에 내가 가르쳤던 제자가 홍익대 교지에 발표했던 작품 원고를 재작년 이사를 하면서 발견했다. 이 친구(김이원씨)가 등단해서 시인으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묻혀두기엔 아깝고 해서 실었다."

-그래도 표절, 아니 도용이다.

"지난해 11월 김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내가 먼저 '네 시를 이번 시집에 실었다'고 말해줬다. 그 자리에서 김씨가 표절 문제 운운했으면 내가 어떤 조치라도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언론에 알리고 하는 걸 보니 배신감 같은 것도 느낀다. 그때만 해도 표절이나 도용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요즘 건강이 안 좋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치자. 그럼 다시 문제가 된 40대 주부 '바이올린'이란 작품은 어떻게 된 건가.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e-메일을 통해 시 창작 지도를 하던 주부 학생의 작품이다. 작품이 좋아 내가 손을 봐서 시집에 실어도 되느냐고 본인에게 물어봤고 본인도 승낙했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 실었다."

-그래도 선생의 창작물은 아니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면 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때는 그래도 되는 걸로 판단했다. 이번 시집에 385편의 시를 실었다. 한두 편 뺀다고 시집이 안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실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해냄출판사는 5일 마 교수가 제자 시 도용 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시집을 전량 폐기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문제가 된 시집 '야하디 얄라숑'을 전량 수거해 폐기한다고 발표했으며, 연세대 측은 마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 교수는 "학교에서 징계위원회를 연다는 얘기를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었다"며 "그저 잘못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