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작심 발언' 속셈은 레임덕 막자는 자기암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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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는 할 일도 열심히 하고 할 말도 다 할 생각"이라고 예고했던 노 대통령은 이 말대로 공개된 장소에서 거의 매일같이 전방위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치권은 그 배경을 나름대로 분석하며 대통령의 말 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적어도 노 대통령의 연쇄 발언은 두 가지 효과를 낳고 있다.

보통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는 초반부터 대선 예비 주자 등 미래 권력 쪽으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들은 이런 흐름을 끊어놓고 있다. 대신 대통령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주 국무회의에 참석하겠다" "끝까지 내게 주어진 합법적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등의 발언에서 보여지듯이 국정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새해 벽두에 공직 사회에 충분히 전달했다.

임기 마지막 해 대통령의 가장 큰 적은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레임덕에 시달릴 수 있는 환경들에 둘러싸여 있다. 낮은 여론 지지도, 구심점 없이 정계개편 논란만 무성한 여당 등이 대표적이다. 그 때문에 노 대통령의 작심 발언은 국정 장악력을 잃어선 안 된다는 자기 암시인 동시에 공직 사회 등 외부에 자신의 의지를 알리는 메시지 정치인 셈이다.

5일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고교 동문(부산상고)인 한행수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며 즉각 사표를 수리할 뜻을 공개한 것에서도 임기 말 공직 기강을 다잡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국민의 평가를 포기했다"는 대목은 여론 등에 구애받지 않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일종의 '마이웨이' 선언이다. 청와대는 정책기획위원회 주관으로 현 정부 출범 이후의 정책을 자체적으로 평가, 정리한 백서 발간까지 준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다른 한편으로 언론과 야당 등을 향해 갈수록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지지 세 결집을 통해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곤 했던 대선 후보 시절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문제는 정치적 상황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이런 행보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우선 노 대통령의 이런 행보에 제동을 걸 만한 정치세력이 미약하다. 유력 대선 주자가 없는 여권은 정계개편 논의 등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노선 투쟁에 빠져 있다. 노 대통령이 주도하는 메시지 정치에 제동을 걸 만한 힘이 없다. 당장은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반사 이익을 얻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나라당도 곤혹스러워질 수 있다. 대통령의 메시지 정치가 계속될수록 대선이라는 미래 이슈가 잠식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승희.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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