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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구제 절차 간소화 하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원진레이온 근로자의 중독사고는 직업병에 관한 법과 제도가 예방적 차원에서는 물론,발생후의 사후관리에 있어서도 커다란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주고 있다.
현재 의식불명상태에 있는 이 회사 방사과 반장 박수일씨의 경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직업병 증상이 나타나도 그 최종 판정을 얻기까지에는 1년이 넘는 시일이 필요하게 되어 있다.
이는 현행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른 요양을 받으려면 1,2차의 검진과 정밀진단,그리고 추적관찰에 의한 확진 등 최소 네차례의 검진을 받아야 하고 판정이 명확히 내려지지 않은 경우에는 다시 노동부의 심의까지 받아야 하는 등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왜 판정절차가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워야 하는가. 이는 결국 기업주들은 산재보험료를 적게 내려하고 노동부는 재해발생건수를 줄여 보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또다시 이번 원진레이온 중독사고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판정절차부터 간소화해야 한다. 증상이 발견되었을 때 즉시 요양과 치료를 받았더라면 최악의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환자가 복잡한 절차때문에 회복불능사태에 이르는 현실이 더이상 방치되어선 안된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에서 약 8천명이 직업병 유소견자로 밝혀졌으나 이 가운데 산재보상을 받은 사람은 그 20%정도인 1천5백여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원진레이온의 경우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직업병 판정절차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고 또 일부는 숨져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직업병인지,개인적인 질병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는게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반 법에서도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 이에 따르면 불분명한 경우에는 일단 직업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더구나 환자가 직업병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더 더욱 불합리한 것이다. 오히려 분쟁소지가 있는 증세라면 기업주측에 직업병이 아님을 입증할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현재 4단계로 되어 있는 판정절차는 최소한 2단계로 축소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일단 직업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발견되면 즉시 작업배치를 바꿔주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직업병 전문기관도 서둘러 늘려야 한다. 진료기관이 전국적으로 10여곳밖에 안되고 그 때문에도 최종 판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가 직업병 문제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직업병문제는 원진레이온의 문제로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직업병문제를 덮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파헤쳐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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