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고임금 대신 고용안정 택해야 비정규직 문제 풀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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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이세정 경제 데스크

"노동계는 높은 급여와 고용 안정 둘 다 추구하지 말고 고용 안정을 우선 택해야 한다."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3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경제뿐 아니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선 "노동 경직성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황 행장은 "높은 임금을 주는 배에 너무 많은 사람을 실으려니까 배가 가라앉거나 탈락자가 비정규직이 됐다"며 "급여의 유연성으로 노동 경직성과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은 보장하되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연말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혀 파장을 일으켰던 황 행장은 "금융권 급여체계를 다 헐어서 직무와 성과에 맞게 보상을 달리 하도록 만들지 못하면 금융선진화는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을텐데.

"우리은행은 이미 직군제가 돼있는 데다 정규직 직원들이 2006년 임금을 동결하는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3월부터 정규직이 되는 비정규직에는 3개 직군이 있으며 임금체계가 다르다.) 지난해 은행권 단체협상 때 대표로 나가 보니 노조에선 임금 동결이나 직군제를 거부하고, 은행장들은 비정규직이 일거에 정규직이 될 때 발생할 비용 부담 때문에 고개를 흔들더라.

그렇지만 은행 입장에선 비정규직인 창구직원과 콜센터 직원이 고객과 최일선에서 만나는 은행의 눈과 귀인 만큼 이들을 2년마다 교체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둘 상황이 아니다."

-추가 비용 부담은 없나.

"당장은 정규직이 임금을 동결했고, 그 재원으로 비정규직에 복리후생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 다만 앞으로 정규직들이 임금인상을 이번 동결분까지 합해 더 요구하거나 비정규직들이 임금을 빨리 정규직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나오면 엉망이 될 것이다. 반대로 모두 생산성 향상을 이루고 그 성과를 나눠갖겠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면 이번 합의가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여전하다.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비정규직이 생긴 것은 우리나라 노동계가 높은 급여와 고용 안정 두 가지를 모두 원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두 가지를 다 얻었지만 비정규직은 낮은 임금에 고용마저 불안해졌다. 노동계가 두 가지 중 고용 안정을 우선적으로 택해야 한다. 그리고 급여는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 예를 들어 운전직을 별도 직군으로 인정해 연봉 상한선을 둘 수 있다면 기업들이 왜 운전직을 아웃소싱하겠는가.

금융권에선 현재의 단일호봉제와 연공서열제로 된 경직된 임금테이블을 직무급제와 성과급제로 바꿔가야 한다. 유연한 급여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금융산업의 인프라 구축에 큰 숙제다."

-부동산 가격 거품은 어떻게 보나.

"개인적으로 버블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수요공급을 보면 금방 깨질 버블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수도권 외의 비인기지역 부동산 가격이 경착륙할 가능성이 있고, 그럴 경우 제2금융권의 상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 금융권의 시스템 위기로 번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 금융감독원의 주택담보대출 억제책에 적극 협조하겠다."

-올해 가장 걱정되는 일은.

"부동산값 폭락, 환율 급락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동산값은 15% 정도 하락할 경우 경착륙이라고 본다."

-최근 환율 하락은 어떻게 보나.

"해외에 돈을 내보낼 필요가 있다. 특히 기업이나 은행이 해외에서 벌어지는 인수합병(M&A)에 적극 참여할 때가 됐다. 그게 개인의 해외투자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금융업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세계적 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에서 무한경쟁을 하며 경쟁력을 키운 뒤 해외로 진출했다. 금융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언제 국내 은행들이 일본 도요타처럼 '마른 수건 쥐어짜기 경영'을 해봤나. 은행도 무한경쟁을 통해 대표선수를 만들고, 국내 시장이 좁다고 느끼면 해외로 나가게 된다. 내 기준에서 보면 은행권의 진검승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황영기 행장은=2004년 삼성증권 사장에서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변신한 뒤 3년 만에 우리금융 총자산을 55% 늘리고(129조원→199조원), 주가를 1.5배(8850원→22100원)끌어올렸다.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다음해 성과급을 당겨 주는 바람에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성과주의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다.

정리=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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