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반년…유재식 특파원이 본「겉과 속」(3)"비터펠트 시선 방독면 써라"|공해 몸살 그 동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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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비터펠트(Bitlir Feld)-.
굳이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괴로운 땅」「쓰디쓴 들판」쯤에 해당하는 말이다.
지명의 내력을 알 수는 없지만 구 동독 내에 있는 비터펠트는「이름에 걸맞게」세계에서 공해가 가장 심한 곳으로 정평 나 있는 도시다.
구 동독 40년 통제경제의 최대 실패작으로 꼽히는 공해문제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1백50km 가량 떨어진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인 비터팰트는 멀리에서 보아도 구 동독 최대의 화학단지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공장 문 닫는 길뿐>
1백 개가 넘는 화학공장과 화력발전소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화학단지 특유의 악취가 진동했다. 시가지의 건물들은 대부분 검은색을 띠고 있어 공해에 그을린 모습이 역력했다. 가로수들도 검게 그을려 있었고 군데군데 말라죽은 나무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의 포항이나 울산처럼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이 많은 것도 다른 도시와 대조적이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스 마스크를 써야 한다』느니, 『이 지역의 공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장을 모두 폐쇄하는 것」이라는 식으로까지 알려진 곳이 비터펠트다.
그러나 겉으로 본 비터펠트는 종전의 소문보다는 다소 나아진 게 분명했다.
이 지역 수목의 75%가 공해로 고사했다는 1년여 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90년4월16일자)는 지금 같아선 다소 과장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진상은 무엇일까. 기자의 궁금증은 비터펠트 볼펜화학 주식회사(Chemi AG Bitter Feld Wolfen)의 기술, 판매 및 환경보호 담당이사인 디터 라쉬케씨의 설명으로 풀렸다.
『생태학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로 공해가 대폭 줄었습니다』
즉 구 동독의 민주화이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공해 방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공해가 줄었고(생태학적 이유)아울러 지난 l년 사이에 많은 회사가 경영 적자를 견디지 못해 조업단축을 하거나 아예 문을 닫았기 때문에(경제적 이유)공해가 훨씬 줄었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지역 대기 공해의 대명사인 이산화황(아황산가스)은 1년 전보다 55%, 이산화질소가 55%, 염화 물 40%, 분진 33%가 각각 줄었다는 것이다. 하천의 경우도 페놀이 80%, 수은이 30%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공해 물질이 30%이상 줄어 이곳을 흐르는 물데 강(엘베강 지류)에 창 꼬치라는 민물고기가 얼마 전 다시 발견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년 동안 회사 자체의 출연금과 주 정부·중앙정부 예산 1억 마르크 정도가 투입됐고, 올해는 고온 소각로·하수정화 시설·독극물 분리수거 시설 등에 2억 마르크를 투자할 예정이라는 것.

<갈탄분진 등 주범>
특히 공해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갈탄을 이용한 공장의 폐쇄. 80여 개의 단위공장에 전력을 공급하던 케미 AG의 화력발전소를 비롯, 이 지역 5개 콤비나트 중 필름AG를 제외한 4개 콤비나트가 지난 l년 사이에 갈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천연가스 화전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 동독지역은 그동안 자급자족 원칙에 충실해 전력의83%, 전체 에너지원의 70%정도를 자국 산 저질 갈탄에 의존해 왔다. 이 때문에 아황산가스와 갈탄의 분진이 구 동독의 대표적 공해로 꼽혀 왔다.
지난해까지 1년 평균 6백만t의 아황산가스와 2백만t의 분진이 구 동독 전지역에서 배출돼 왔다. 아황산가스는 산성비의 원인이 됐고 이 때문에 구 동독지역의 산림은 87년 전체의 3l·7%, 88년 44·4%, 89년 54·3%로 고사면적이 급격히 늘어났다.
구 동독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평방km당 아황산가스 배출량은 89년 50t으로 유럽 최대였고 비터펠트 지역은 이 수치가 l천t을 넘은 것으로 추정됐었다.
그러나 라쉬케이 사의 이같은 주장보다는 이 회사 홍보담당 우테히르쉬 박사(여)의 솔직한 고백이 더욱 사실 쪽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공해가 줄어든 것은 대부분 공장폐쇄와 조업단축에 기인하고 있다. 캐미 AG단도 80개 공장 중 그간 30개가 문을 닫았고 조업중인 공장의 가동률도 50%정도에 불과하다.』이 때문에 지난해 초 7만 명이던 이 지역 전체 취업노동자중 그간 3만 명이 실업자가 됐다는 것이다. 케미 AG의 경우 지난해 1만7천6백 명이던 종업원이 현재 1만3천명으로 줄었고 올해 다시 7천∼8천명을 더 해고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 그녀의 우울한 설명이었다.
공장을 나와 하천의 오염을 알아보기 위해 인근 물데 강으로 갔다.
창꼬치 등 민물고기가 서식한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강 건너에서 한 시민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물오리가 네 마리 헤엄치고 있었다. 물이 깨끗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악취가 나거나 폐기물이 떠다니지는 않았다. 한강보다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곳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크라이스 크랑켄 하우스라는 시립병원을 찾았다.
『어린이의 경우 다른 공업지대와 마찬가지로 기관지 질환이 가장 흔하고 피부질환도 많다. 유아천식도 가끔 있다. 다른 지역보다 2배정도 많은 수준이지만 지난해보다 20%가량 환자수가 줄었다』
이 병원 소아과 켈러 박사(54)는 이러한 어린이 질병의 원인은 모두 공해 때문이라며『지난해보다 공해가 줄어 환자수도 줄고 있으나 의사로서 욕심 같아서는 공해배출 공장들이 더 폐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아 사망률 높아>
이 지역의 유아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도 타 지역에 비해 남자의 경우 5년, 여자의 경우 8년 정도 짧다는 보고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그러한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며 아직까지 그러한 의학적 조사는 한번도 실시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곳 뿐 아니라 할레·라이크치히 등 공업지대의 어린이들은 정기적으로 공기가 맑은 곳으로 옮겨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지역 어린이들은 정부보조로 1년에 1∼2회 북해 등 청정지역으로 3주씩「휴가여행」을 떠나고 있다.
비터 펠트 일원에서 예상보다 덜 심각한 공해현장을 목격한 기자는 주민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비터 펠트시와 볼펜시 사이에 있는 질버제라는 호수를 찾았다.
「은의 호수」라는 근사한 이름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산업폐기물 저장소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택가와 마주하고 있는 이 호수는 근처에만 가도 코를 찌르는 악취로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인근 공장에서 아무렇게나 버린 폐수와 산업쓰레기로 뻘이 되다시피 한 이 호수 주위엔 철책이 쳐져 있었고 철책 안에는「생명에 위험하니 접근하지 마시오」라는 내용의 경고표지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독의 호수」(인근 주민들은 이 호수를 이렇게 부른다)가 그래도 지난해보다는 냄새가 덜한 편입니다.』
호수에서 불과 30m쯤 떨어진 곳에 사는 노이만씨(45·케미 AG근무)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호수가 조금은 맑아졌다며 즐거워했다.
이곳이야말로 구 동독 지역 공해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비터펠트 지역의 환경이 좋아졌다고 자랑하던 회사관계자들이 이곳을 쉬쉬하며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를 알 만했다.
구 동독 정부의 방조 하에 가능했던 이와 같은 자연환경에 대한 무신경으로 구 동독의 하천은 대부분 중병을 앓고 있다.
독일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구 동독지역의 하천과 호수 가운데 30%정도가「생태학적으로 죽은 상태」로 일체의 생물이 서식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45%에 달하는 하천과 호수의 물은 어떠한 현대 기술로도 식수로 바꿀 수 없는 상태로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식수로 사용 불능>
구 동독의 대표적 하천인 엘베강의 경우 매년 7백t의-구리·납·카드뮴 등 중금속과 20t의 수은, 20만t의 질소화합물, 1만2천t의 인분을 북해에 쏟아 붓고 있다. 이중 구 서독지역에서 유입되는 양은 하루 30t에 불과하며 5백70t은 매일 구 동독 지역에서 유입되고 있고 나머지는 이 강의 상류인 체코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독일 환경부는 밝히고 있다.
이밖에 화학비료와 농약의 남용으로 구 동독 지역의 토양도 극도로 오염돼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이 농약과 중금속에 오염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구 동독 지역의 공해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의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공해방지 시설을 갖출 것인가, 아니면 비터펠트의 예에서와 같이 가장 확실한 이 지역 공해 해결책인 공해공장을 모두 폐쇄하고 새로 건실할 것인가 부 터 따져 봐야 하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독일 경제 연구소는 대충 20년에 걸쳐 3천억 마르크 정도는 투자해야 구 동독지역의 공해가 현재 구 서독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공해와 자연보호를 위한 연방 협회는 공기정화에만 2천2백억 마르크, 하수정화에 1천2백억 마르크, 그리고 토양정화에 7백억 마르크 등 모두 4천l백억 마르크가 드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른 모든 분야야 마찬가지로 통일 독일의 공해 문제는 여전히「분단」돼 있고 이를 구 서독 수준으로「통일」시키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필요하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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