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태권도계의 '한국끼리' 언제까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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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2월 카타르에서 열린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태권도.유도.가라테가 하나의 경기장에서 열렸다. 올림픽에 완전히 정착한 유도, 정식 종목으로 영구히 남으려는 태권도, 새로 진입하기 위해 애쓰는 가라테. 이들 세 종목의 경기장 안팎 풍경을 한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태권도는 관중 호응 면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스포츠로서의 태권도는 세계화에 성공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행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가라테의 국제연맹은 스페인에 있다. 유도는 한국의 박용성 총재가 국제연맹 수장이다. 핵심 기구인 기술위원회는 프랑스에 있다. 이처럼 일본의 두 격투기 종목은 행정기구와 직책을 모두 국제화했다. 행정, 심판 판정 등에서 종주국이 독주.독점한다는 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태권도는 어떤가. 한국.한국인이 모든 걸 장악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WTF).아시아태권도연맹이 모두 한국에 있다. 연맹의 사무처도 한국에 있고, 한국인 일색이다.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에서 태권도 개혁평가위원회가 열렸다. 각국 대표들은 사무처의 제3국 이전과 한국인 일색의 사무처 직원을 외국인에게도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한국만을 위한 연맹이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WTF의 문동후 사무총장은 이런 의견을 수용하자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다. 문 총장은 "태권도 개혁의 마지막은 기구의 국제화, 사무처 직원의 글로벌화"라고 말했다.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이 가진 기득권을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 총장은 귀국 후 외국어 등 국제업무 능력을 평가하고, 이를 사무처의 인적 쇄신과 연결하려 했다. 당연히 사무처 내부의 저항을 불렀다.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급기야 지난달 26일 조정원 WTF 총재는 "문 총장을 비롯한 모든 사무처 직원의 업무를 정지한다"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문 총장은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고, 개혁안에 대한 내부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2일 사표를 냈다. 조 총재는 '개혁 브레인'이던 문 총장의 사표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조 총재가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분란을 매듭지을지, 아니면 확실하게 개혁을 단행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다만 국수적인 모습의 태권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한 국제스포츠계의 시선이 따갑다는 점은 지적해 두고 싶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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