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원이 정보기관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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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정보원이 무엇 하는 곳인가. 국정원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악명을 떨치던 역할을 털어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보기관으로서의 기본 역할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국정원 간부 수십 명이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간부들을 이끌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사진이다. 6시간30분 만에 사진을 내리도록 했다지만 인터넷의 속성상 이미 사진은 퍼질 대로 퍼진 상태다. 정보요원이라면 평생 얼굴과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철칙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봐도 최고 책임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사실 얼굴이 공개된 정보원이 무슨 정보원인가.

국정원은 사진기자를 초청한 일이 없다고 해명한다. 대중 앞에 떼로 몰려다니면서 비공개 행사라고 말만 하면 되는 것인가. 정치인처럼 애국심을 과시할 일도 없고, 깡패처럼 위세를 보일 일도 없는 곳이 국정원 아닌가. 더군다나 사진을 찍어도 제지는커녕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았다니 정보기관으로서 기본적인 보안의식도 없다는 말인가. 이런 사람들이 지구상 가장 위험한 한반도의 정보기관 간부들이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일부 국정원 간부는 명함까지 찍어 다니고, 전.현직 간부들이 공개 발언으로 빈번하게 뉴스의 인물이 되는 일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날 김 원장은 직원들에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보 유출과 줄 대기를 엄단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보기관원의 줄 대기란 것도 결국 과거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어떤 사람들이 국정원 간부로 임명됐느냐가 국정원 직원들에게 교훈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원장부터 코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사람이 백 번 줄 대기를 엄단하겠다고 말해 봐야 소용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 태풍이 분 곳이 국정원이다. 스스로 코드 인사를 탈피하고 전문화돼야 정치 바람을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줄 대기를 말하면 야당에 줄 서면 엄벌하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