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현장 발길잦은 김총재/정순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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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야세력을 새식구로 맞아들여 신접살림을 시작한 신민당 김대중 총재의 행보가 그 어느때보다 부산하다.
9일 통합창당대회이후 연일 최고위원회와 당무위원회 등을 열어 당의 기본 골격을 갖추고 19일 개원하는 임시국회 대책에다 6월 광역의회 필승전략을 세우느라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는 형편인데도 일부러 틈을 내 민생현장을 찾아나서고 있는 것이다.
15일 해거름 무렵에는 동대문시장을 직접 찾아 「장바구니물가」를 체험하더니 16일 아침부터는 서울·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인 팔당호를 현장방문,낙동강 페놀사태와 같은 수질오염사건의 재발 가능성이 없는지를 살피기도 했다.
김총재 일행은 18일에는 충남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우리의 첨단과학기술의 현주소를 살피고 당차원의 지원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야당=투쟁」의 등식으로만 인상지어져온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이번 야당총재의 잇따른 민생현장 나들이는 조그만 변화를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엄밀히 따져보면 이번 나들이의 1차목표는 새로 맞은 새식구들을 국민들에게 선보이고 새로 출범한 신민당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번 나들이는 수권대체세력임을 표방하고 있는 김총재 자신이 지금까지 야당의 선명성 경쟁이나 강경투쟁 일변도의 정치행태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분석이라 생각된다.
이같은 점은 신민당이 당장 이번 임시국회 전략으로 대결보다는 합리적인 대화에 비중을 두고 물가·환경오염 등 민생문제 해결을 3대과제중 하나로 택하고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김총재의 나들이를 「정치쇼」라고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다. 민자당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불신의 깊은 늪속에 빠져있는 우리 정치도 이젠 달라져야 하고,또 야당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이고 그런 바람을 야당도 감지하기 시작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이번 나들이가 일과성이나 홍보용으로 그치지 말고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행태 전환의 실마리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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