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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 동독 경제 나치 집권 전야와 비슷|통일 반년… 유재식 특파원이 본「겉과 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라이프치히-. 독일 최대의 문호 괴테가 대학시절을 보냈고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 안에 잠들어 있는 중동 부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다.
인구 50만 명의 상공업 중심지인 이 도시가 언제부터인지 저항과 분노의 도시로 변했다.
유명한「월요 데모」때문이었다.
89년 9월4일 니콜라이 교회에서 월요평화 기도회를 마친 수백 명의 시민이 교회 앞에서 여행자유를 요구하면서 이 데모는 시작됐다. 다음 월요일인 9월11일과 18일 시위를 벌이던 수백 명이 체포됐고 급기야 9월 마지막 월요일인 25일8천명이 모여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며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어 l0월2일 2만5천명, 10월9일 7만 명, 10월16일 10만 명, 10월23일 30만 명으로 시위대는 점차 늘어났고 이들의 요구도 민주개혁·자유총선·통일 등으로 바뀌었다.

<공업생산도 격감>
월요 데모에 용기를 얻은 당시 동독국민들은 베를린, 드레스덴 등 도처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결국 베를린 장벽의 개방과 동독정권의 붕괴, 나아가 독일의 통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 월요 데모가 지난달 11일 재개돼 독일 정부는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 줬다.
사실 그동안 걸프전이나 소련의 급박한 정세 등에 묻혀 표면화가 안됐을 뿐 구 동독 지역의 경제여건은 지난해 7월의 경제통합 이후 급속히 악화돼 왔다.
구 동독의 최근 경제상황은 나치의 출현을 초래했던 l932년 상황과 곧잘 비유되기도 한다. 3백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실업자(정부의 공식발표는 3월말 현재 완전 실업자 80만8천명과 반실업상태인 조업단축 노동자 2백만 명을 합쳐 2백80만여 명)는 금년 말까지 5백만 명을 돌파, 32년의 실업률 50%(6백만 명)를 넘는 60%에까지 이를 것으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물론 여당 격인 자민당의 람스도르프 총재까지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전년대비20% 떨어졌던 공업생산량은 올해 다시 20% 감소할 것으로 베를린의 독일경제 연구소(DIW)는 분석하고 있어 이 역시 2년간에 걸쳐 35·9%의 생산력이 떨어졌던 지난 32년의 상황과 비슷하다.

<포르노 잡지 가판>
그리나 이 모든 것은 일찍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그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무슨 큰 돌발사태라도 난 것처럼 언론에 대서 특필되고 독일정부나 국민이 이 문제로 시끄러워진 것은 지난달 11일 라이프치히 월요 데모가 재개된 이후부터다. 바로 월요 데모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월요 데모의 참모습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11일 라이프치히를 찾았다.
라이프치히의 거리에도 동베를린과 마찬가지로 서쪽 기업광고가 즐비했고 곳곳에 노점상이 성업 중이었다. 신문 가판 대엔 포르노 잡지와 서쪽 신문이 많았으나 구 동독 기관지 노이에스 도이칠란트는 없었다.
열살 쯤 돼 보이는 더벅머리 소년이 포르노 잡지 겉장을 넘기려 하자 주인이 눈을 흘기며 야단쳤다.
토마스 교회 옆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는 카타리나라는 여인은 하루 수입이 1백 마르크쯤 된다고 했다. 괜찮은 수입이다.
니콜라이 교회 옆 구 시 청사 근처에서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로렌츠씨는『통일 이후 관광객이 많아 요즘은 하루평균 2백여 명의 고객이 몰린다』며『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장사가 잘 된다』고 즐거워했다.
몇 블록을 지나 카를 마르크스대 본관에는 라이프치히 대라는 새로운 이름이 들어 있었다.
지난 2월13일 대학 이름을 옛날 식으로 환원했다고 설명한 이 대학 바르텐베르크부 총장은『통일 후 폐강으로 6백 명의 교수가 학교를 떠나야 할 처지』라며『주로 경제학·정치학·법학·사회학·역사학·철학과 교수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씁쓸하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월요 데모가 멀어지는 게반트 하우스와 오페라 극장 사이의 카를 마르크스 광장의 이름도 지난해 통일이후 옛 이름인 아우구스투스 광장을 되찾았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광장의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고 오페라 극장 앞 연단에서는 데모를 부추기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이윽고 6만 명쯤의 인파가 광장을 꽉 메웠다. 이날의 집회는 금속 노조(IG메탈)와 공공기관 및 체신·운수노조(OTV)주도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들의 붉은 깃발과 플래카드가 대부분이었다.『선거사기꾼 콜과 크라우제, 집에 가라』『복지 거짓말·세금 거짓말·수도 거짓말』『콜에게 빨간 카드(축구의 퇴장 신호)를』 등의 피킷도 보였다.

<콜 총리 공약 신뢰>
옆에서 취재하던 한 독일인 기자는『오늘 시위 군중의 3분의 1은 민사요(구 공산당)소속이고 3분의 1은 노조원이며 라이프치히 시민은 3분의 1도 안 된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보니 요란하게 박 수치고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은 연단근처에 있는 사람들뿐이고 나머지 시민들은 멀지 감치에서 연설 내용을 덤덤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취재한 일본 시사통신 기자도「기대 이하」라고 이날 데모를 평가했다. 6시40분쯤 데모가 끝나자 삽시간에 광장이 썰렁해졌다.
호텔에 돌아오면서 월요 데모는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었고 콜 총리의 주장처럼 3∼5년이면 동쪽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느낌도 들었다.
마침 독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인파스 여론 조사 소는 최근 동쪽 주민의 84%가 콜 총리의 선거공약을 신뢰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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