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만의회 폭력으로 “얼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극소수 야서 육탄전으로 눈길끌기 작전/국민당 지배체제 자체가 시험대에 올라
지난 8일부터 17일간 회기로 시작된 대만의 임시국민대회(국대)가 폭력사태(대만식 표현으로 의장무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66년이후 25년만에 열린 임시 「국대」는 최근 대만정부가 중국을 반란세력으로 규정한 헌법임시조항(이른바 동원감란시기)을 폐지한 것에 발맞춰 중국과의 관계개선 및 대만의 민주화추진을 주의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회목표는 국민당의 일방적 바람일뿐 야당인 민진당등 대만의 반체제 세력들은 생각이 다르다.
정기적으로는 6년마다 열리는 「국대」는 총통·부총통의 선출 및 해임,헌법개정등의 권한을 가진 대만의 최고권력기관이다.
1972년이래 일부 대표의 정기 개선이 실시되어 왔으나 5백71석의 대표 가운데 90%가 넘는 압도적 다수는 국민당대표와 47년 대륙에서 선출된 「종신직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민진당대표들이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수적 열세를 극복,주목을 끌기위한 정치적 전술로 일단 볼 수 있다.
이같은 여야간 극단적 대립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다. 2천만대만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대만본성인들의 경제적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민당내부에서 개혁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륙의 「혁명1세대」에 해당하는 종신직 국대대표들이 고령으로 줄어들고 있는 시기에 제도적 대응이 없다면 15%인구에 불과한 대륙출신자들이 행사해온 정치적 지배력이 송두리째 대만출신들의 수중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국민당은 대만성 출신 리덩후이(이등휘)를 당대표로 선출하는 노련미를 보이며 계엄령해제,야당인정등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7월 법적 근거없이 각계 대표들로 구성한 「국시회의」를 소집,광범한 민의를 수렴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국시회의에서 여야간 대체적 합의에 도달한 것은 ▲대만성주석등 지방자치단체 대표의 직접 선거 ▲공산정권과의 교전상태를 전제로한 헌법체제의 수정(동원감란시기종결) ▲종신 민의대표의 은퇴촉진등 3가지로 요약된다.
그러나 「총통의 직접선거」와 「회의결론에 대한 찬반을 묻는 전국민에 의한 직접투표」의 두가지 문제에 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이에 따라 민진당의원들은 종신직 대표의 「헌정개혁」참여반대,「동원감란시기임시조항」폐지외에 국민당에 의한 헌법개정거부,「공민직접투표」에 의한 헌법제정 또는 수정등의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 국대보이콧,가두시위전개등을 밝힐 예정이다.
여야간의 이견은 이밖에도 국시회의에서 일단 합의한 「총통민선」규정에서도 엇갈린다.
야당측은 국시회의에서 「총통민선」을 『「공민전체」가 선거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을 「대만주민에 의한 직접 선거」로 해석하려 한다.
국민당은 이에 반해 「현행의 총통선거기관인 국민대회를 선거인단으로 개편한 미국대통령선출」방식에 의한 총통선출쪽을 고수하고 있다.
「대만주민에 의한 대표의 선출」이란 일반민주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 대만에서는 사실상 「대만독립」의 의미가 성립된다는 점에서 난점이 발생한다.
더구나 이제는 비록 실효성이 없다고는 해도 47년 성립된 이래 대륙과 11억인구에 대한 「법통」을 규정한 현재의 「중화민국 헌법」이 부정된다는 점에서 국민당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민진당등 반국민당세력들로서는 민주화를 외면하는 「헌정개혁」이란 국민당의 지배구조를 대만에 정착시키려는 음모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국민당정권은 일단 대만의 반체제적 역량을 제도권에 수용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치적 지향점을 서로 달리하는 여야간의 불연속선만큼은 해소할 방도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때(종신직대표들의 수명과 비슷하겠지만)대만내부에서 극적인 여야간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당의 지배력 붕괴,대만의 독립화,이에 대한 반발로서 중국의 무력개입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시 「국대」의장 량쉬룽(양숙융)은 폭력사태에 견디다못해 민진당을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폭력집단」으로 규정하면서 대만의 민주정치가 빈사상태에 빠졌다고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이 당면한 정치현실은 「민주화」라는 이상의 실현여부가 아니라 「국민당의 지배체제정착」 그 자체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홍콩=전택원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